[사설] '이념 전쟁터'로 변한 국정감사장

by논설 위원
2015.10.09 03:00:00

어제 막을 내린 제19대 국회의 마지막 국정감사에 좋은 점수를 주긴 글렀다. 국감 기간 내내 ‘호통’과 ‘망신주기’에 면피성 답변만 난무했을 뿐 국민이 원하는 ‘정책 국감’은 철저히 외면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막판에는 국감장이 ‘이념 전쟁터’로 전락하는 바람에 국감의 본래 취지가 아예 실종돼 버렸다.

이번 국감의 화제 인물은 단연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다. 지난 2일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민중민주주의자’, 즉 ‘변형된 공산주의자’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공산주의자라고 확신한다”는 답변으로 이념전쟁의 주역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MBC의 신뢰도에 의문을 제기한 야당 의원에 맞서 “의원님들도 신뢰도가 그리 높은 건 아니다”고 한술 더 뜨기도 했다.

이로써 뒤에 이어진 KBS와 방송통신위원회 국감은 고 이사장의 사상을 검증하는 인사청문회로 돌변했고, 야당은 긴급 의총을 열어 박근혜 대통령에게 고 이사장 해임과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새누리당 일각에서도 ‘부적절한 표현’이란 지적이 나오자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내던 고 이사장은 “앞으로 이사장 본분에 어긋나지 않게 업무를 처리하겠다”며 한발 물러선 상황이다.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사진=연합뉴스)
그가 공안검사 출신이라지만 MBC가 공영방송이란 점에서 그 최대주주인 방문진의 이사장으로서 할 말은 따로 있다. 그의 진중하지 못한 발언을 나무라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몇 년 전의 발언을 들춰내 이념전쟁으로 몰고가며 국감을 내팽개친 야당에게도 책임이 없지 않다. 고 이사장은 1981년 부림사건 당시 피의자들이 수사검사인 자신을 포섭하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공산화되면 심판하겠다”고 협박까지 했다고 밝혔다. 과거 운동권 일부가 남쪽 독재가 싫다고 북쪽 독재를 기웃거렸다는 지적도 있는 터에 그의 ‘소신’만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국감은 국감다워야 한다. 국정 전반에 걸친 엄정한 조사를 통해 행정부를 감시·비판하는 중차대한 기능을 국회 스스로 저버려선 안 된다. 내년부터는 ‘졸속 국감’ 소리가 절대 나오지 않도록 의원들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