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회계 읽어주는 남자]"미안해, 외상값 못받아 망할 뻔했어"

by김도년 기자
2015.01.11 09:39:26

효성, 불량 매출채권 6000억 자산 처리…"부도 면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기계장비 샀다고 속인 뒤 감가상각…2006년 분식회계 자진 신고 땐 말 안해

[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분식회계에서 ‘분식’은 한자로 가루 분(粉)에 꾸밀 식(飾)을 씁니다. 회계장부에 화장을 했다는 의미이지요. 화장은 매일 자기 전에 지우는 것이고 화장 지운 ‘쌩얼’은 배우자에게 매일 공시(?)하며 살아가게 되지만, 한번 저지른 분식회계는 지울 수도 없습니다.

분식회계는 저지른 뒤가 더 문제입니다. 순간 위기를 모면하려고 분식회계를 했어도 부실을 감춘 회계장부대로 세금을 냈을 테니 세금포탈 혐의가 씌워지고, 부풀린 이익에 따라 배당도 했을 테니 위법 배당 혐의도 더해집니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부르는 것처럼 말이지요.

1998년 외환위기 당시에 했던 거짓말이 지금까지도 회사를 괴롭히는 곳이 있습니다. 일반인들에겐 오토바이 ‘효성-스즈키’로 유명한 ㈜효성(004800)입니다.

효성의 분식회계는 앞서 다룬 세모그룹이나 부산저축은행과는 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대주주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목적이었다기보다는 기업이 부도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측면은 있지요. 하지만, 가난한 자의 도둑질을 정당화할 수 없듯 어떤 경우에도 분식회계는 용납되지 않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을 겁니다.

외환위기 이전 효성의 모기업 효성물산은 정부 시책에 따라 수출 물량을 늘리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거래 상대방이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곳인지는 깊이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돈은 나중에 받기로 하고 상품만 넘겨줬습니다. 외상으로 받을 돈, 회계장부에선 이를 ‘매출채권’이라 합니다.

문제는 1998년 세계 경기가 나빠지면서 거래처들이 줄줄이 외상값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렇게 갚지 못한 금액이 점점 불었고 효성물산은 이 돈 때문에 파산 위기에 처합니다.



효성물산은 그해 ㈜효성과 합병하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에 돌입합니다. 합병하더라도 못 받은 외상값 6000억원은 그대로 남아 있을 겁니다. 앞으로도 못 받을 돈이니 ‘불량 매출채권’이 된 것이지요.

효성은 이 불량 매출채권 6000억원을 모두 손실로 처리하게 되면 퇴출 위기에 몰릴 수 있다고 봤습니다. 효성물산이 안고 있는 부실을 효성이 떠안으면 당시 금융당국의 부실기업 퇴출 기준인 ‘부채비율 200%’를 넘어서게 된 것이었지요.

그래서 묘안을 낸 것이 ‘감가상각’입니다. 감가상각이란 기업이 돈을 버는 데 쓰는 기계나 건물 등이 시간이 지날수록 마모가 될 때 그 마모되는 만큼의 가치를 계산, 한꺼번에 처리하지 않고 여러 해로 나눠 비용으로 처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령 떡볶이 노점상을 하는 A씨가 사업에 필요한 소형 트럭을 사는 데 들인 돈을 한꺼번에 비용으로 처리하면 사업 시작부터 엄청난 영업손실을 떠안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재무 정보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트럭을 사는 데 들어간 비용을 트럭의 수명으로 나눠 처리하는 것입니다.

효성은 있지도 않은 6000억원짜리 기계장비를 유형자산으로 회계장부에 기록합니다. 그리고 그 기계장비의 수명으로 나눠 6000억원이란 거액을 조금씩 손실로 떨어냈습니다. 있지도 않은 자산이 생겼으니 자산 규모는 부풀려졌고 발생하지도 않은 감가상각비를 수익에서 뺐으니 그만큼 세금을 덜 내왔던 겁니다.

효성은 2013년 그동안 분식회계로 덜 내왔던 세금을 모두 납부했습니다. 2006년에도 해외 자회사의 가치를 부풀렸다고 분식회계 사실을 고백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말하지 못한 고백을 금융당국의 지적을 받은 뒤에야 한 겁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7월 재벌총수로선 이례적으로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에게 ‘해임 권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지금도 재판은 진행 중이지만, 어쨌든 1998년부터 잘못 낀 첫 단추를 찾아냈으니 이젠 단추를 바르게 끼워나가길 바랄 수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