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고름 고쳐 매고…혜원의 '그 여인' 첫 외출

by김용운 기자
2014.07.11 07:03:00

DDP ''간송문화'' 전 2부 ''보화각'' 전
신윤복 ''미인도'' 76년만에 외부 공개
정갈한 머리·하얀 버선코 섬세한 돋보여
정선 ''풍악내산총람''·김홍도 ''황묘농접'' 등 112점
9월28일까지

혜원 신윤복 ‘미인도’(사진=간송미술관)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흑단 같은 머릿결, 여인은 가체가 무거운 듯 살짝 고개를 숙였다. 가체 아래 귀밑머리는 미풍에도 살풋 흩날릴 듯 하늘거렸다. 화원이라지만 남정네의 시선이 닿는 순간, 그림 속 도도한 여인은 설렌 기분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옷고름과 노리개를 꼭 잡았다. 화원의 눈길은 여인의 시선과 마주하지 못하고 뒷여백에 닿아 무심한 듯 흩어졌다. 그래도 풍성한 치마 밑 살짝 나온 하얀 버선코는 놓치지 않았다.

조선시대 회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혜원 신윤복(1758~?)의 ‘미인도’가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의 고즈넉한 담장을 넘어 화려한 도심 복판으로 외출했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이 9월 28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내 디자인박물관에서 여는 ‘간송문화’ 전 2부 ‘보화각’ 전에 나온 것이다. ‘보화각’은 국내 첫 사립 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의 옛 이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사비를 털어 미술관을 개관하자 스승인 위창 오세창이 ‘빛나는 보물을 모은 집’이란 의미로 이름을 지어줬다고 한다.

세로 114.2cm 가로 45.7cm의 비단 화폭에 그려진 ‘미인도’는 간송미술관이 1938년 개관 이후 국립중앙박물관 대여 전시 외에는 일체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을 만큼 콧대가 높은 작품이다. 그러던 것이 지난 3월 DDP 개관에 맞춰 기획된 ‘간송문화’ 전이 계기가 돼 드디어 미술관 문을 나섰다. ‘미인도’와의 친견을 위해 간송미술관 봄·가을 정기전 때 긴 줄을 기다려야 했던 관람객들은 이제 지하철역과 이어진 DDP 안으로 입장하기만 하면 된다.

‘간송문화’ 전 2부에서는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제70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 제68호) 등 문화재 위주의 1부 전시 때보다 ‘미인도’ 같은 회화 명작들에 무게 중심이 실렸다. ‘미인도’ 외에 조선 후기 겸재 정선(1676~1759)의 ‘풍악내산총람’도 나왔다. 겸재가 인생의 완숙기인 70대에 접어들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다. 금강산의 가을 모습을 한 화폭에 압축해 놓은 그림으로 겸재가 완성한 진경산수화의 정수로 평가받고 있다.



겸재 정선 ‘풍악내산총람’(사진=간송미술관)


또한 지금은 아파트 콘크리트벽으로 둘러싸인 한강변 압구정의 여유로운 풍경을 담은 ‘압구정’도 선보인다. 들고양이 한 마리가 병아리를 낚아채 도망가고 있는 장면을 해학적이면서도 절묘하게 포착해낸 긍재 김득신(1754~1822)의 ‘야묘도추’, 제비꽃 곁에서 나비를 희롱하는 고양이를 통해 어르신들의 장수를 축원한 단원 김홍도(1745~1806)의 ‘황묘농접도’ 등도 한자리에서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다.

이외에도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국보 제72호)과 ‘금동삼존불감’(국보 제73호) 등의 불교조각품과 추사 김정희(1786~1856)의 ‘명선’ 등 서예 작품도 관람객들을 맞는다. ‘명선’은 조선의 다도를 정립한 초의선사에게 보낸 작품으로 추사와 초의선사의 우정이 담긴 작품이다.

이들 ‘찬란한 보배’에 넋을 빼앗기다가 문득 현실이 부질없게 느껴진다면 ‘간송 전형필’ 평전을 쓴 이충렬 작가가 추천한 작품을 보며 위안을 삼을 수도 있다. 바로 추사가 일흔한 살에 쓴 ‘예서 대련’이다. 여기에 쓰인 ‘고희부처아녀손’ ‘대평두부과강채’는 ‘좋은 모임은 부부와 아들·딸 손자’ ‘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과 나물’이란 뜻. 천하의 추사도 늘그막에 깨달은 건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었다. 우리 인생의 ‘보화’가 무엇인지 한 번쯤 상기해볼 수 있다면 전시장을 방문한 의미는 한층 각별해질 것이다.

총 112점이다. 간송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미술관이 보유한 국보 12점, 보물 10점 가운데 문경오층석탑(보물 제580호) 등 이동이 불가능한 2점을 제외한 모든 작품을 내놨다. 일반 8000원, 학생 6000원. 070-4217-2524.

추사 김정희 ‘명선’(사진=간송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