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당국회담' 걷어찬 북, 진정성 안 보인다

by논설 위원
2013.06.13 07:39:50

어제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던 남북 당국회담이 수석대표의 격(格)을 놓고 대립하던 끝에 결국 무산된 것은 유감이다. 회의장 준비까지 갖춰가던 마지막 단계에서 하루 전날 파국을 맞았다는 점에서도 실망스럽다. 미리부터 회담의 성과를 낙관하던 국민들에게도 허탈한 마음만을 안겨주고 말았다.

회담이 무산된 것은 국제 관례를 무시한 북측의 무리한 요구로 빚어진 결과임은 물론이다. 북측이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국장을 수석대표로 내세우고도 우리에 대해서는 장관급이 나서야 한다며 요구해온 것은 억지에 가깝다. 현재 조평통 위원장 자리는 공석이라지만 부위원장이 여러명 있는데도 그 밑의 직책인 차관보급을 우리의 장관급과 같은 반열로 주장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남북간 대화 채널이 끊어진지 5년 만에 회담이 열린다는 의미를 감안했다면 북측도 당연히 그에 걸맞는 대표를 내세웠어야 했다. 우리가 실무접촉 단계부터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수석대표로 나와야 한다는 뜻을 전달했던 것이 그런 이유다. 대표단 진용을 밝히지 않다가 막판에 이르러 명단의 동시교환을 고집한 것부터가 잘못이다.



북측이 정말로 대화에 뜻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애초부터 격이 맞지 않는 수석대표를 내세우고도 회의의 무산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면 ‘신뢰 프로세스’는 요원하다. 우리 입장에서도 대화가 필요하다고 해서 상식에도 맞지 않는 굴종을 강요당하면서까지 회담 테이블에 마주앉아서는 문제의 소지를 키울 뿐이다. 국민들을 납득시키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회담은 무산됐을망정 모처럼 실무접촉이 이뤄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일단은 소득이다. 북측도 긴장과 대립보다는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더구나 남북 간에는 서로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그 가운데서도 개성공단 문제나 금강산 관광, 이산가족 문제 등은 시급히 해결될 필요가 있다.

북측의 처지에서도 해결이 지체될수록 상황은 자꾸만 불리해질 뿐이다. 핵무기 개발로 인해 국제사회로부터 쏠리는 따가운 눈총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남북대화를 뿌리쳐서는 곤란하다. 대화의 문이 열린 만큼 후속 접촉을 통해 조속히 회담이 열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작은 것 하나부터 서로 믿음을 쌓아가려는 노력이 그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