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노컷뉴스 기자
2008.11.01 09:55:00
미국사회의 근간 ''와습''(WASP) 변화가능성 희박
[노컷뉴스 제공] 한달 전 美 펜실베이니아주의 게티스버그 군사박물관을 찾을 기회가 있었다.
에이브러험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 선언으로 촉발된 남북전쟁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다. 특히 그곳에서 링컨의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을 실제 육성을 통해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좋은 경험이 됐다.
하지만 기자가 무척 의아스러워 했던 것은 그곳에서 흑인 관람객들을 거의 만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박물관 여직원에게 이유를 물었지만 그도 고개만 갸우뚱했을 뿐 뾰족한 대답은 내놓지 못했다.
혹여 아프리카 아메리칸들에게 게티스버그는 '백인들만의 전쟁터'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흑인들에게 링컨은 남다른 존재다. '흑인 인권운동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3년 25만명의 군중앞에서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의 명연설을 했던 곳도 다름 아닌 워싱턴 링컨기념관이었다.
지금은 화폐가치가 달라졌지만 예전 모든 미국민들의 호주머니에 들어 있었던 1센트짜리 동전에는 링컨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1909년부터 통용된 '링컨 페니'는 내년 2월 링컨 탄생 200주년을 맞아 새로운 디자인으로 바뀌어 시중에 나오게 된다.
만일 링컨을 가장 존경한다는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링컨 페니'는 오바마 시대 출범과 함께 흑백 인종차별이 상존해 있는 미국 사회에 새로운 의미가 될 수도 있을 법하다.
그렇다면 건국 232년만에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시대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갈등과 분열을 치유한 통합의 지도자'로 불리는 링컨의 메시지는 흑인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있는 것일까...
더구나 '변화와 희망'을 내건 오바마 시대가 열린다면 흑백 인종차별은 과연 새로운 전기(轉機)를 맞게 될 것인지...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흑인 대통령의 탄생이 혁명에 비유될만한 역사적 사건이지만 인종차별은 오바마 당선으로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오바마는 그동안 인종주의에 대한 언급을 극도로 자제해 왔다. 자신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제러마이어 라이트 목사의 '갓 댐 아메리카' 발언 파문이 불거졌을 때 관련 언급을 몇차례 했을 뿐이다.
하지만 당시 언급에서도 오바마는 "나는 단 한 번의 선거와 단 한 명의 후보, 특히 나처럼 완벽하지 못한 후보 한 명으로 우리가 인종차별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오바마는 흑인이면서도 흑인의 잠재된 피해의식을 탈피해 인종과 빈부, 보혁갈등을 '변화-희망-통합'으로 극복하자고 역설하며 계층 구분없는 고른 지지를 얻어냈다.
결과적으로 그의 선거전략이겠지만 오바마의 '흑색돌풍'은 백인들이 그의 메시지에 공감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백인이 미국 전체 인구의 66%를 차지하는 반면 흑인은 13%에 불과한 여전한 소수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흑인 노예제는 남북전쟁이 끝난 뒤 1964년 민권법 제정을 계기로 법적, 제도적으로 완전히 금지됐지만 흑백 인종차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어쩌면 흑백 차별은 미국 사회에서 극복되기 어려운 거대한 장벽이기도 하다.
미국이 초강대국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인종문제는 공개적으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또 일반 사람들의 사고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역설과 모순이 되고 있다.
흑인 여성으로 미국의 첫 국무장관이 된 콘돌리자 라이스는 올해 초 언론 인터뷰에서 "인종문제가 해결의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미국을 세운 백인들에게 부여했던 기회를 흑인들에게는 똑같이 제공하지 않은 '태생적 결함(birth defect)' 때문"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녀는 "흑인과 백인들이 함께 미국을 세웠지만 유럽인들은 그들의 선택으로 이곳에 왔고, 아프리카인들은 족쇄에 채워져 끌려왔다"면서 이는 "미국 건국과정의 아름답지 않은 실제"라고 지적했다.
최근 존경받는 대표적 공화당원의 한사람인 콜린 파월 前 국무장관이 오바마 지지를 선언했을 때 일각에서는 '같은 흑인이라는 이유'를 제기하기도 했다.
만일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미국을 넘어선 세계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되겠지만 그의 '담대한 희망(The Audacity of Hope)'에도 불구하고 '와습'(WASP-앵글로 색슨계,백인,신교도)으로 통칭되는 미국 사회의 기존 틀이 바뀔 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