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치권 눈치 보기 바쁜 판사들, 사법부 독립 누가 믿나

by논설 위원
2024.01.11 05:00:00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장인 강규태 서울중앙지법 형사34부 부장판사가 최근 사표를 냈다. 이 사건 재판을 16개월 끌다 선고도 안 한 상태에서다. 선거법 위반 사건은 6개월 안에 1심을 끝내도록 돼 있지만 판사인 그는 10개월 동안 법을 어기고도 재판을 마무리하지 않은 채 법복을 벗겠다고 했다. 강 부장 판사는 이러고도 대학 동기 단체 대화방에 “내가 조선시대 사또도 아니고 증인이 50명 이상인 사건을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는 푸념 투의 글을 올렸다고 한다. 법관으로서의 사명감이나 양심을 찾아보기 어려운 행태다.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 내용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대선 때 이 대표가 대장동 사업의 핵심 실무자인 고 김문기씨를 몰랐다고 한 것과 국토부가 백현동 부지를 용도 변경해 주라고 협박했다고 말한 것이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한 것이다. 혐의를 뒷받침할 증거는 차고 넘친다는 것이 검찰과 법조계의 거의 일치된 견해다. 그런데도 재판 과정에서는 석연찮은 점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공판 준비 절차를 6개월이나 진행했고, 처음부터 ‘2주에 1회씩’ 재판 기일을 잡았다. 이 대표의 단식 등을 이유로 재판을 두 달 넘게 미루기도 했다. 피고측의 지연 전략이 먹혔다 해도 재판부가 노골적으로 몸을 사린 인상이 역력하다.



판사들이 정치인 재판만 맡으면 눈치를 보는 사실은 숫자로도 확인된다.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21대 국회의원 26명에 대한 1심 평균 기간은 887일로 일반인(185일)의 5배에 가깝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의 황운하 의원은 4년, 위안부 후원금 횡령 혐의의 윤미향 의원은 2년 5개월이 각각 걸렸다. 늑장 재판과 눈치 보기가 범법자 정치인 양산을 부추긴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판사 개인에 대한 인신 공격 등 팬덤 정치의 부작용이 극심해지면서 형사합의부는 기피 대상이 된 지 오래라고 한다. 그러나 강 부장판사의 무책임한 처신과 같은 행태가 반복된다면 법치를 우롱하고 사회 질서를 파괴하는 범법자들은 사법부까지도 우습게 볼 게 분명하다. 대법원은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눈치 보기, 늑장 재판도 모자라 폭탄 돌리기까지 만연한다면 사법부는 더 이상 정의 수호의 보루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