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논설 위원
2023.07.07 05:00:00
금융권이 이자를 못 낸 연체자들에 대한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그 중에는 이자 뿐만 아니라 원금까지 깎아주는 곳도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이달부터 연체 이자 납입액에 대한 원금상환 지원 프로그램을 시행한다. 고객이 연체된 이자를 내면 그 금액만큼 원금을 깎아주는 내용이다. 향후 1년간 대략 40만명에게 5600억원의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한다.
은행측은 이에 대해 연체율 관리와 상생금융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은행권의 원화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12월 0.25%에서 올 4월에는 0.37%로 뛰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8월 이후 2년 8개월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것이어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또한 가계와 자영업자, 영세 기업들 중에는 고금리로 불어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이곳 저곳에서 빚내서 빚을 갚는 다중채무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대출자들은 허리가 휘어지는데 은행들은 이자 장사로 막대한 영업이익을 누리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런 점들에 비춰 보면 우리은행의 이번 조치는 연체율 관리 뿐만 아니라 이익의 사회환원과 취약계층 지원 등 긍정적 측면이 적지 않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꼬박꼬박 이자를 갚은 대출자들이 느끼는 상실감도 생각해봐야 한다. 당장 인터넷에는 이번 조치에 대해 “나도 연체할 걸”, “반듯하게 사는 사람들이 손해 보는 세상” 등의 하소연이 줄을 잇고 있다. 빚 탕감 조치가 연례 행사처럼 이뤄지고 있는 점은 더 큰 문제다. 정부는 30조원 규모의 새출발기금을 조성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 가운데 부실 차주에게 원금의 60~80%를 감면해주고 있다. 최근에는 부실 위험에 빠진 새마을금고도 연체자에게 이자를 전액 감면해주기로 하는 내부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연체자를 신용불량자로 만들어 재기할 기회마저 주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일시적 어려움에 빠진 취약 차주가 재기할 수 있도록 당장의 과도한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도움이 이자 감면이나 상환 유예를 넘어 원금탕감까지 가면 곤란하다. ‘빚은 버티면 해결된다’는 인식을 심어 악성 채무자를 양산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