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영화 ‘택시운전사·1987’과 유사…지지·응원 부탁”

by황병서 기자
2023.02.09 06:00:00

국민통합정부(NUG) 한국대표부 묘헤인 공보관
미얀마 유학생·노동자들과 국내서 시위
“‘침묵시위’서 ‘무장투쟁’으로…군부독재에 맞설 것”

[이데일리 황병서 기자] “영화 ‘택시운전사’나 ‘1987’이 미얀마 상황과 비슷해요. (한국은) 아픈 역사가 있었는데도 좋은 방향으로 발전해 나갔잖아요. 미얀마도 좋은 방향으로 나가도록 저도 힘 보탤 겁니다.”

미얀마 출신으로 2012년 한국에 와 한국어에도 능한 묘헤인(32·사진)씨는 ‘미얀마 내전’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망명정부 격인 국민통합정부(NUG) 한국대표부에서 공보관으로 활동 중인 그는 지난 7일 인천 부평구 소재 NUG 대표부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며 한국 국민의 지지와 응원을 부탁했다.

미얀마 군부가 2021년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킨 직후 시작된 시민 불복종 운동은 2년째 이어지고 있다. 아웅산 수치 고문이 이끈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총선 압승을 부정하며 반군부 진영 인사들을 가두고 저항 세력을 유혈 탄압한 것을 계기로, 시위는 미얀마 현지를 넘어 전세계 7개국(한국·일본·프랑스·영국·노르웨이·체코·호주)에 망명정부 대표부를 설치하는 식으로 번지고 있다. 군부의 강압적 진압으로 현재까지 민간인 2950여명이 사망하고, 1만 3800여명이 체포된 걸로 알려졌다.

지난해 서울대 국제대학원에 입학한 묘헤인 씨는 NUG 활동을 병행하며 한국에서 시위에 힘을 보태고 있다. 그는 미얀마 유학생 및 노동자들과 함께 주한 미얀마대사관과 무관부가 있는 서울 용산구와 성동구 일대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묘헤인 씨는 “군부가 시위자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도 무차별적으로 총을 쏴서 죽이는 상황”이라며 “초기에는 ‘침묵시위’처럼 비폭력 방법을 구사했지만, 이제는 총을 들고 싸우는 무장투쟁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어 “1948년 독립 후 미얀마엔 네 번의 쿠데타와 무수한 투쟁이 있었다”며 “총을 들고 싸우는 것은 그만큼 미얀마인들의 의지가 강하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버마족이 다수 거주하는 중부지역도 예전엔 내전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총을 든 이들이 시위 행렬 선두에 서 있다”고 들려줬다.





미얀마 사람들이 무장투쟁으로 맞서게 된 데엔 열악한 경제상황도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군부가 통치한 뒤 미얀마 경제 상황은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며 “미얀마 인구 3명 중 1명에 인도주의적 지원이 필요하고, 인구의 절반이 빈곤층으로 전락했다는 UN의 통계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접 국가인 태국과 말레이시아로 불법으로 넘어가다 체포돼 다시 송환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한국에 NUG대표부를 둔 이유로는 군부 쿠데타란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한 한국 국민의 열띤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쿠데타 초창기 때부터 다른 나라보다 한국 시민사회와 언론이 훨씬 많은 관심을 보였다”며 “특히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있었던 광주시에서 연대 차원으로 1억원을 지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한국에 거주 중인 미얀마 유학생, 노동자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2021년 11월에 암화화폐 테더로 100달러 등 4종류의 만기 2년짜리 채권을 발행했다”며 “한국에 사는 미얀마인들의 도움으로 14억원을 모아 시위자들을 지원하는 예산으로 썼다”고 말했다.

다만 한국정부엔 섭섭함도 드러냈다. 그는 “망명정부 격인 NUG를 설치한 건 다른 나라와의 연대를 통해 군부로 흘러가는 각종 자금을 막기 위한 것”이라면서 “영국과 말레이시아는 외교부 장관이 NUG의 외교부 장관을 만나 인도주의적 지원 등을 논의했지만 한국은 문재인정부, 윤석열정부 모두 편지와 이메일 등을 보내도 아무 반응이 없다”고 토로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독재체제 종식뿐만 아니라 연방제 민주주의 체제로의 변화를 소망했다. 그는 “미얀마는 예전부터 소수민족 간의 내전이 심해 필연적으로 군부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쿠데타의 빌미를 제공했다”며 “소수민족들 간의 자치를 인정하는 체제로 바꾸고 군부의 역할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