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의 현장클릭]정부는 패싱·소비자에겐 뺨 맞는 정유사

by김영수 기자
2020.04.26 07:00:55

반도체보다 수출기여도 높은 정유업, 7대 기간산업에서 제외 논란
사상 첫 마이너스 유가에..소비자들, 휘발윳값 높다는 인식 여전

[이데일리 김영수 기자] “정유산업이 기간산업이 아니라는 건 도저히 이해가 안됩니다.”

지난 22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40조원을 지원받게 될 7대 기간산업에서 정유업이 제외되자 정유업계는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기업안정화 지원방안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고용유발효과가 크지 않은 정유업을 제외시킨 것이다. 이날 오후 정유업계는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어려움을 호소했던터라 상실감은 더 컸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2일 서울 종로구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열린 정유업계 간담회에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뉴스1)
사실 정유업은 국내 수출기여도가 반도체보다 높은 22%를 차지할 정도로 크지만 일자리창출 기여도는 낮다. 20년 이상 숙련된 장기근속자들이 많은데다 공장가동을 위한 필수인력들이다보니 구조조정도 여의치 않은 구조다. 장기근속자들이 많아 1인당 평균 급여도 1억원을 훌쩍 넘어간다. 정유업은 차, 항공, 조선, 해운업과 달리 유관 하도급 업체도 많지 않아 정유사 수익 악화에 따른 고용 한파가 크지 않은 것도 특징이다.

정유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에 손을 빌리는데 구조조정 등 자구노력은 하지 않는 것처럼 비춰져서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공장가동률 감축이나 각종 경비 절감, 임원 급여 삭감 등을 통해 자구노력을 하고 있지만 정부나 시장의 눈높이와는 괴리가 있다”며 “모든 산업과의 연관성이 큰 정유업을 기간산업에서 제외시킨 것은 이 같은 인식을 방증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토로했다.

그나마 국세청이 4월 납입 유류세(교통·에너지·환경세, 개별소비세)를 3개월 유예시켜준 것은 가뭄의 단비다. 월 1조4000억원 정도의 세부담 절감효과를 가진다는 점에서 한시적으로 유동성에 숨통이 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3월 수입품목 관세 부과 신고분이 5월 말로 2개월 연장됨에 따라 월 9000억원 규모의 세부담을 덜게 됐다. 정유업계는 다만 그간 줄곧 요청했던 유류세 인하 또는 폐지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점은 아쉽다는 반응이다.



21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 모습. (사진=연합뉴스)
사상 첫 마이너스 유가를 기록하면서 국내 전국 평균 휘발윳값은 리터당 1200원대로 내려앉았지만 소비자들의 눈높이와 괴리가 크다는 점도 정유사의 속을 끓게 한다. 오를 땐 가파르게 오르지만 내릴 땐 찔끔 내린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정유사들은 휘발윳값이 급격히 떨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고정비인 유류세와 유통비용(판매가의 약70%)이 큰데다 주유소 판매마진(판매가의 약10~15%)과 정유사의 조달 및 정제원가(판매가의 약10~15%) 등을 감안한다면 현재 휘발윳값도 바닥 수준이라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유사 입장에선 휘발유값을 낮추기 위해서는 고정비를 제외한 판매마진을 일부 포기해야 하는데, 적자규모가 수 천억원에 달하는 현 상황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라며 “당장 휘발윳값을 낮추기 위해서는 원유수입관세나 유류세를 폐지 또는 낮추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2일 울산시 남구 SK에너지 원유 저장탱크의 ‘부유식 지붕’이 탱크 상단까지 올라와 있다. 부유식 지붕은 탱크 내 원유 저장량에 맞게 위아래 자동으로 움직이게 된다. (사진=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