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국내 인력 ‘블랙홀’처럼 흡수…반도체도 한류도 위험
by장종원 기자
2016.01.05 06:00:00
연봉 2~9배·고용보장 파격 조건 제시에 흔들
불안한 국내 경기·고용 상황도 중국행 부추겨
| SK하이닉스 임직원이 이천 300mm 공장 내부에서 반도체 장비의 모니터를 들여다 보고 있다. SK하이닉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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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종원 김유성 기자] 국내 산업의 핵심 경쟁력인 ‘인재’의 중국 유출이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첨단산업뿐 아니라 항공·방송·게임·화장품 등 국내 기업들이 경쟁력을 가진 분야의 핵심 연구 인력이 주 타이다.
기존 연봉의 2~3배를 보장하는 중국업체들의 파격적인 혜택과 희망퇴직·구조조정이 일상화되는 등 갈수록 나빠지는 국내 고용 환경이 겹치면서 중국행 비행기를 타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러한 인력 유출은 결국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하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우려가 더해진다.
◇中 반도체·디스플레이 인력모시기 ‘올인’
중국은 반도체 산업을 7대 신성장 산업으로 지정해 육성하고 있다. 특히 한국이 주도하는 메모리반도체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글로벌 3위 메모리반도체회사 미국의 마이크론 인수를 시도하는 등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전문가들에 대한 ‘스카웃’이 본격화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반도체의 경우 제조·양산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해 이런 노하우를 가진 국내 전문가에 대한 수요가 높다”면서 “삼성전자(005930)나 SK하이닉스(000660)뿐 아니라 관련 업체들에도 스카웃 제의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업체들이 헤드헌터를 통해 제시하는 조건은 파격적이다. 한국 연봉의 3~4배에 고용보장, 주택·차량 및 교육비 지원 등까지 포함된다. 업계 관계자는 “상시적인 구조조정으로 퇴직이 멀지 않은 이들에겐 뿌리치기 힘든 매력적인 조건”이라고 덧붙였다.
디스플레이업계에서는 중국업체들의 차세대 기술인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인력을 영입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BOE는 2003년 한국의 LCD 업체인 하이디스를 인수해 핵심 기술과 인력을 얻어 10년만에 디스플레이산업의 강자로 성장했다”면서 “중국업체들은 OLED 역시 국내 뿐 아니라 일본, 대만 전문가들을 영입해 단숨에 기술격차를 줄이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항공·게임도 인력 유출 표적
동북아 허브공항인 인천국제공항을 매개삼아 항공산업을 육성하려는 전략도 인재 유출로 차질을 빚고 있다. 국내 베테랑 조종사들의 중국행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자국민의 해외 여행 급증에 따라 조종사 수급에 문제가 생긴 상황이다. 이를 가까운 한국 등의 조종사를 영입해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중국 항공사들은 국내 항공사의 2~3배에 달하는 임금액, 교육, 주거 등 파격적 복지혜택을 제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국내 조종사 인력유출 현황과 문제점’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항공 국내조종사 퇴사자는 2013년 26명에서 2014년 27명, 올해 1~7월 42명으로 급증하고 있다. 국내 항공사 전체 수치로 보면 한국인 조종사 퇴사자는 2013년 111명, 2014년 155명, 2015년 1~7월 138명으로 증가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더 나은 대우를 좇아 중국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게임산업 역시 중국 대표 게임사로 발돋움한 넷이즈를 비롯해 중국내 모바일 게임 업체들이 한국 개발자 인력을 흡수하고 있다. 한국인 개발자 대다수는 나이 마흔을 바라보거나 넘겨 본부장이나 임원이 되지 않으면 정리 대상인 사람들이었다.
게임 업계 관계자는 “작년에 게임업체들이 실적 부침을 겪으면서 인력을 뽑기보다 내보내는 쪽이 더 많았다”며 “거주비를 지원하고 5년동안 취업보장까지 해주니 안 갈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 게임사에 취업한 개발자 출신 임원은 “중국 게임사에서 일하는 개발자 대부분이 20대 초중반인데다 미국 등 유학파 출신도 많다. 현장 경험은 부족하지만 습득력만큼은 스펀지같다”고 말했다. 중국 게임산업이 국내를 추월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방송 전문가 ‘중국행’…한류 멀지 않았다
한류(韓流) 역시 위기를 맞고 있다. 중국이 막대한 돈으로 한류의 진앙인 방송 콘텐츠 인력과 기업을 사들이면서 그들만의 경쟁력을 키워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장태유 PD가 중국 최대 엔터테인먼트사인 위에화 엔터테인먼트(YUEHUA Entertainment)와 계약을 맺고 드라마 작업을 시작했다. 최근 ‘쌀집 아저씨’로 불리는 ‘나는 가수다’ 김영희 PD도 후배 PD 들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갔다. 중국 남색화염오락문화유한공사와 손잡고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할 계획이다.
또한 드라마 ‘올인’, ‘일지매’ 등을 제작한 초록뱀 미디어가 최근 중국 자본에 넘어갔으며, 1000만 관객의 영화 ‘변호인’을 배급한 영화사 ‘NEW’도 중국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2대 주주가 됐다.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 여행객의 필수 구입 품목인 화장품 역시 최근 국내 연구 인력이 중국으로 이동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우수한 국내 인력으로 경쟁력 있는 화장품을 개발하게 되면 화장품 한류도 한계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