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아슬란·제네시스·K9.. 현대·기아 브랜드 고급화 나선 '삼총사'

by김형욱 기자
2015.08.10 01:00:00

첨단 안전·편의사양으로 짧은 역사 만회 노력
단점없는 무난함 강점.. '나만의 특징' 아쉬워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판매가격 4000만원 이상 내수 고급자동차 시장의 수입차 점유율은 약 70%다. 전체 시장을 놓고 보면 수입차 점유율은 15% 전후라지만 고급차 시장은 이미 수입차가 점령했다.

현대·기아자동차를 비롯한 국산차는 이곳에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다양한 대응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고급 브랜드란 하루 이틀 안에 만들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현대·기아차가 그나마 내놓은 대응 전략이 고급 모델의 다변화다. 경쟁자가 없고 수요가 한정돼 있던 과거엔 굳이 여러 모델을 내놓을 필요가 없었다. 괜히 많이 내놔봤자 간섭 효과 때문에 서로서로 수요를 잡아먹었다. 그러나 이젠 상황이 다르다.

현대차(005380)와 기아차(000270)가 지난해 말 나란히 출시한 아슬란과 K9 5.0 퀀텀이 대표적인 라인업 다변화 사례다.

현대 아슬란은 그랜저 기반으로 새 디자인과 고급 편의사양을 추가한 준대형 세단이고, 기아 K9 5.0 퀀텀은 제네시스급 K9에 현대 에쿠스급 엔진과 편의사양을 추가한 대형 세단이다.

현대·기아차는 이로써 그랜저-아슬란-제네시스-K9-에쿠스라는 촘촘한 대형 고급 세단 시장을 완성했다. 올 연말 신형 에쿠스 출시로 정점을 찍는다. 최근 이중 아슬란과 제네시스, K9 3인방의 짧은 체험 기회를 얻었다. 이들의 장·단점은 무엇이며 국내외 시장 경쟁력은 어떠할지 느껴봤다.

아슬란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꽤 좋은 편에 속했다. 그랜저 기반이고 크기도 비슷하지만 디자인 면에선 확실히 차별화했다. 더 커 보이는 느낌이 강했다.

게다가 조용하고 편안했다. 새 차라는 점도 있기는 했지만 바람·엔진 소리가 음소거 된 느낌이었다. 핸들과 모니터, 기어박스에 달린 기능 버튼은 깔끔하고 직관적으로 배열돼 있었다. 처음 접했음에도 조작하기 쉬웠다. 국산차 최초로 적용했다는 퀄팅을 더한 나파 가죽은 충분히 안락했다.

시승 모델은 배기량 3.3리터 가솔린 엔진의 G330 익스클루시브였다. 공격적이기보다는 부드러운 느낌의 세팅이다. 도심에서의 약 50㎞의 시승 동안 실연비는 9.9㎞/ℓ였다. 거의 막히지 않았지만 공인연비보다 좋았다. 아슬란의 공인 복합연비는 9.5㎞/ℓ(도심 8.1 고속 11.9)다.

현대 아슬란 주행 모습. 현대차 제공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ASCC) 기능을 이용해 앞차와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달리는 현대 아슬란 모습. 앞유리엔 주행 정보가 나와 있다.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기능이다. 김형욱 기자
특히 고급 안전·편의사양이 매력적이었다. 기본형부터 앞 유리에 주행정보를 비추는 헤드업디스플레이(HUD)가 적용됐다.

최고급 모델에 170만원의 옵션인 드라이빙 어시스트 패키지2를 선택하면 앞차와의 거리를 유지해 주는 정속주행 장치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ASCC)도 있다. 잘 활용하면 고속도로나 막힐 때나 매우 편안한 기능이다.

시승 동안 이처럼 차 자체의 단점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100점 만점을 줄 순 없는 사정이 있었다. 고객 입장이 돼 생각하면 막상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슬란 판매가격 3990만~4590만원이면 살 수 있는 경쟁 모델이 너무 많다.

고급차라면 무난한 고급 성능·기능 외에 어떤 가치를 바라게 마련이다. 아슬란에게는 그러나 이른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좋은 무난한 고급차라는 것 외에 새로운 가치를 찾기 어려웠다. 다 좋지만 합쳐 놓으니 2% 부족하다. 대중 브랜드 ‘현대’의 차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일까. 고급 옵션과 편의사양을 빼면 그랜저와 큰 차별점을 찾기 어려워서일까.

밑지더라도 좀 더 모험을 감행했다면, 좀 더 차별화 한 모델로 내놨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았다. 아슬란이 아직 미생인 이유다.

시장 반응은 나쁘지 않다. 인기 모델인 그랜저와 제네시스 틈바구니에서 올해 월평균 830여대씩 판매했다. 쏘나타와 그랜저 사이의 i40는 월평균 188대꼴이다. 그러나 상당수가 대기업 임원 등 법인차다. 수입차 대항마, 나아가 해외 시장에서 먹히는 모델이 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제네시스는 현대 고급화 전략의 핵심 모델이다. 해외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상품가치를 인정받는 고급차이기도 하다. 2013년 말 출시한 2세대 제네시스는 한층 완성형에 가까워졌다.

시승 모델은 배기량 3.8리터 6기통(V6) 가솔린 엔진에 사륜구동(네바퀴굴림) 장치 ‘에이치트랙(H-TRAC)’을 적용한 G380AWD(5710만~7167만원)이었다.



제네시스는 엔진 배기량에 따라 3.3~3.8 2개 모델, 구동방식에 따라 후륜·사륜구동 2개 모델로 총 4개 모델로 판매한다. 북미에선 에쿠스의 같은 5.0 8기통 모델도 있다.

2세대 제네시스는 1세대 모델 때보다 디자인은 좀 더 다듬고 성능은 좀 더 단단했다. 고급차로서 손색없었다. 단점을 꼽자면 달릴 때 생각보다 몸집이 무겁다는 느낌을 받았다. 북미형 5.0 모델은 어떨지 궁금하다. 실제 차체가 이전 모델보다 무겁다.

연비도 옥의 티다. 도심 위주의 거친 주행이었다고는 하지만 약 70㎞를 달린 후 실연비를 측정해보니 5.6㎞/ℓ였다. 공인 복합연비는 8.5㎞/ℓ(도심 7.4 고속 10.5)다.

현대 제네시스 주행 모습. 현대차 제공
현대 제네시스 실내 앞좌석 모습. 김형욱 기자
현대 제네시스 실내 뒷좌석 모습. 김형욱 기자
메르세데스-벤츠나 BMW, 아우디 같은 고급 브랜드에 대한 욕구를 배제한다면 ‘가성비’로는 수입차와도 충분히 견줄 만했다. 국내 공식 판매가격은 4650만~7167만원이다. 벤츠로 치자면 중형급 C클래스나 준대형급 E클래스 가격에 뒷좌석에 모니터까지 달린 대형 세단을 살 수 있는 셈이다. 출시한 지 1년 반 이상 지난 만큼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을 듯하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더 있기는 하다. 제네시스는 현대차가 전 세계에 어필할 정도로 키운 사실상 유일한 모델이다. 그런데 그 활용법이 너무 보수적이다.

국내엔 3.3~3.8 가솔린 엔진, 북미를 포함해도 5.0 엔진의 3개 모델밖에 없다. 2세대 땐 사륜구동을 추가하기는 했지만 유럽을 겨냥한 디젤 모델 소식은 아직 없다. 북미법인 발로 가솔린 트윈터보 엔진을 단다는 소식도 있지만 이 또한 공식적으로는 현대차 북미 판매사(딜러)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유일한 고성능 쿠페 모델 제네시스 쿠페도 세단 신모델 출시 후 1년 반이 지났지만 아직 이렇다 할 소식이 없다. 현대차가 고급 브랜드로 성장하기엔 아직 보수적이란 반증이다.

브랜드 고급화에는 돈이 든다. 필연적으로 실패가 따른다. 제네시스도 모델을 다변화할수록 당장은 밑지는 장사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실패의 과정 없인 ‘싸고 좋은 차를 만드는 브랜드’에서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다.

K9 5.0 퀀텀은 기아차의 자존심이라고 부를 만하다. 기아차는 2012년 K9을 출시하며 엔터프라이즈 단종 이후 10년 동안 명맥이 끊긴 플래그십 세단을 부활했다. 그러나 제네시스와 동급인 3.3~3.8 엔진만 탑재했다는 한계가 있었다.

지난해 말 배기량 5.0리터 8기통(V8) 가솔린 엔진을 탑재한 5.0 퀀텀 모델 출시로 비로소 완전체가 됐다.

K9은 갓 3년 된 모델이다. 전통이 없다. 단점이라면 단점이지만 그만큼 고집이나 편견 없이 다양한 시도를 했다는 건 장점이기도 하다. K9을 낮게 평가하는 많은 사람이 ‘이 브랜드 저 브랜드를 따온 것 같다’고 비판하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좋은 게 좋다’고 생각하는 보통의 운전자에겐 나쁠 것 없다.

HUD·ASCC 등 첨단 편의사양은 어느 고급 브랜드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특히 조작법이 직관적이다. 계기판 디스플레이를 조작하는 핸들 위 다이얼식 버튼이 이채롭다. 스포츠·노멀·에코 등 주행 방식에 따라 차의 특성이 확연히 달라질 뿐 아니라 계기판의 구성과 색상이 바뀐다. 다른 고급 브랜드처럼 디자인 변화의 통일성이 없다는 건 아쉽다.

5.0 퀀텀의 가격은 8620만원이다. 4990만~7260만원의 3.3~3.8 모델과 디자인 면에서 확연히 차별화된다.

배기량이 높은 만큼 좋은 연비를 기대할 순 없다. 약 50㎞의 도심 시승 동안 평균 실연비는 4.5㎞/ℓ였다. 공인 복합연비는 7.6㎞/ℓ(도심 6.3 고속 9.9)다. 단순히 연비를 생각한다면 3.3~3.8 모델이 낫다. 복합연비가 9.3~9.6㎞/ℓ다.

그 대신 굉장히 공격적이다. 에쿠스와 같은 엔진이지만 세팅을 달리했다. 출력이 더 높다. 무거운 기함이지만 페달 반응이 좋다. 요즘은 흔치 않은 고배기량인만큼 응답성은 확실하다. 핸들 감각이 스포츠 세단처럼 단단한 건 아니지만 확실히 출력은 좋다.

현대차가 제네시스와 에쿠스에 기대하듯 기아차도 K9을 고급 브랜드로서의 도약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기아차는 K시리즈 세단과 다양한 SUV 라인업으로도 존재감이 있지만 국내외적으로 아직 모닝이나 쏘울, 스포티지R 같은 소형 라인업이란 이미지가 더 강하다.

판매량에서의 존재감이 아직 크진 않다. 국내 판매량은 올 들어 월평균 385대, 이 중 5.0 퀀텀은 월 20~30대꼴이다. 대부분의 국산 고급 대형 세단이 그렇듯 고급 수입 브랜드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다. 100년 넘는 역사의 유수 브랜드와 달리 고급차로서의 기아 K9은 이제 막 3년이 지났을 뿐이다. 기아차의 과제는 당장 이들을 따라잡는 게 아니다. 초기임에도 K9을 선택한 고객을 만족시키며 K9만의 전통을 쌓아가는 일이다.

기아 K9 5.0 퀀텀. 기아차 제공
기아 K9 5.0 퀀텀 주행모드에 따른 계기판 디자인 변화. 김형욱 기자
기아 K9 5.0 퀀텀 운전대 모습. 오른쪽에 계기판 디스플레이를 조작하는 다이얼식 버튼이 눈에 띈다. 김형욱 기자
기아 K9 5.0 퀀텀 운전석 모습. 김형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