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단신배우 "우릴 보는 낯선 시선…재밌잖아요!"

by김미경 기자
2015.06.22 06:42:00

이색배우 둘…인도인 아누팜과 키 130cm 김범진
- 아누팜…외국인노동자 역만 3년째
같은 역도 매번 다르게 하려 연구
멜로연기 꼭 한번 하고파
- 김범진…키작은 멀티맨
대형무대 데뷔 ''행운아''
갱스터 역할로 할리우드행 목표

‘인도 출신’ 아누팜(왼쪽)과 ‘130cm 단신’ 김범진, 두 배우가 생애 첫 인터뷰 중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누팜은 “아직 외국인노동자 역할이 대부분인 초짜 배우지만 열심히 하면 기회가 올 거라 믿는다”고, 김범진은 “관객이 내 자신이 아닌 캐릭터에 오롯이 몰입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사진=한대욱 기자 doorim@).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3년째 같은 역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매번 다르게 하려고 연구한다”(아누팜). “큰 무대에 선 뒤에야 알겠더라. 나를 받아들이는 시간이 관객에겐 필요하다. 겪어야 할 과정이라 생각한다. 극복 중이다”(김범진).

여기 이색(異色) 배우 ‘둘’이 있다. 3년째 외국인노동자 연기만 해왔다는 인도출신의 아누팜(28·ANUPAM TRIPATHI)과 130㎝, 45㎏의 단신배우 김범진(25) 이야기다. 두 배우는 “일반 배우들과는 외형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잃는 것도 있지만 기회를 얻기도 한다”면서 “다름의 시선을 즐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때로는 ‘OK’보다 ‘NG’ 장면이 더 큰 웃음을 주듯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가고 있는 대찬 배우들이다. 두 사람을 최근 서울 중구 예장동 남산예술센터에서 만났다. 둘의 생애 첫 인터뷰란다.

아누팜은 최근 폐막한 제36회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 연극 ‘불량청년’에서 마자르 역을 맡아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폭탄전문가로 외국인이지만 한국 독립을 돕는 조력자로 관객의 큰 웃음을 자아냈다. 아누팜은 “연극 ‘어느 가족의 역사’에서 만난 지춘성 선생의 인연으로 이 작품에도 출연했다”며 “한국에 왔을 때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교수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한국은 제2의 고향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아누팜(왼쪽)과 김범진 두 배우가 생애 첫 인터뷰 중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한대욱 기자 doorim@).
그의 배우생활은 2006년부터. 인도에서 노래를 하다 한번 무대에 서보자는 연출의 제의로 연극을 시작한 것이 이제 인생의 전부가 됐다. “한국에 온 건 2010년이다. 한예종에서 외국인 장학생을 뽑는다는 얘기를 듣고 연기 한번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 무작정 한국을 찾았다.” 1, 2학년 때는 한국어 배우기에 바빴다. 이후 그는 연기가 하고 싶어 대학 3학년 때부터 연극은 물론 상업영화에까지 닥치는 대로 기회가 닿으면 작품 출연을 해왔다고 했다.

아누팜은 “영화 ‘국제시장’,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2’ ‘호구의 사랑’, 연극 ‘사보이 사우나’ 등에 출연한 나름의 다작배우”라며 “지금은 영화 ‘더폰’을 찍고 있다. 역시 액스트라”라고 소개하며 크게 웃었다.

“이젠 외국인노동자 전문 배우다. 의도한 적은 없었지만 주어진 역할 9할이 전부 ‘이주노동자’였다. 나 같은 외국인배우가 한국에서 설 수 있는 무대는 한정돼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같은 역이라도 캐릭터를 변형시키려고 한다. 때론 열심히 일만 하는 노동자가 됐다가 때론 똑똑하게 머리를 쓰는 노동자가 되어 보기도 한다. 비록 단역이지만 말투, 머리스타일, 몸짓을 변형해 남들과는 다르게 해보려고 노력한다.”





김범진은 지난달 막을 내린 연극 ‘페리클레스’에서 멀티역으로 관객에 큰 박수를 받았다. 극 중 악당 ‘볼트’와 ‘까마귀’ 외 여러 배역으로 등장하는데 여주인공 ‘마리나’를 겁탈하려다 정작 그녀에게 교화되고 마는 2%로 부족한 악당 같지 않은 악당 역으로 웃음을 던졌다.

아누팜(왼쪽)과 김범진 두 배우가 생애 첫 인터뷰 중 카메라 앞에서 재미있는 포즈를 연출하고 있다(사진=한대욱 기자 doorim@).
‘페리클레스’는 배우 유인촌이 오랜만에 출연한 연극으로 화제가 된 예술의전당 제작기획 연극. 까마귀와 매우 흡사한 동물소리와 익살스러운 표정 등으로 관객과 스태프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었다.

김범진 역시 ‘페라클레스’를 잊을 수 없는 ‘생애 최고의 작품’으로 꼽았다.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다는 자체가 신기했고 과정도 즐거웠다. 특히 연기적 호흡과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보여줄 수 있는 배역이기도 했다. 관객도 많으니까 진짜 살맛이 났다고 할까. 커튼콜 때 기립박수를 받았는데 벅찼다. 아, 이래서 배우를 하는구나를 또 한 번 느꼈다. 배우 삶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김범진은 험난한 연극 바닥에서 운이 좋은 케이스다. 올해 청운대 방송연기학과를 졸업하자마자 극단 여행자 단원에 합류했다. 양정웅 연출이 대표로 있는 극단 여행자는 연극배우 사이서 평가가 좋은 극단으로 소문이 난 곳. “졸업을 앞두고 막막했는데 단원을 뽑는다고 해서 서류를 냈을 뿐 당시 극단 여행자가 그렇게 좋은 곳인 줄 몰랐다. 올 1월 정식 단원으로 입문했다. 그러곤 바로 ‘페리클레스’로 대형 연극무대에 데뷔한 거다. 선배들도 ‘진짜 운이 좋은 놈’이라고 한다.”

두 배우의 공통된 고민은 이미지의 한계다. 너무 판에 박힌 연기만 하게 되는 건 아닌지 두렵다고 했다. 아누팜은 “외국사람이기 때문에 언어도 그렇고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면서도 “다만 예전에는 기다리는 게 힘들었는데 이제는 힘들지 않다. 여유가 생겼다. 배우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범진은 “어렸을 때부터 끼가 많았다. 수학여행 장기자랑에 서는 것도 좋아했는데 막상 무대에 서고 보니 관객이 나를 신기해하고 또 받아들일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챘다”고 말했다. 하지만 각오는 단단하다. “이것 역시 내 과제라는 것을 안다. 힘들 거다. 하지만 이겨낼 거다. 관객이 내가 아닌 캐릭터에 오롯이 몰입할 수 있도록 노력할 거다.”

두 배우의 꿈은 뭘까. 장난기 많은 청년 아누팜의 대답이 쏟아졌다. “노동자 역할 좀 그만하고 멜로연기를 꼭 하고 싶다.” 김범진은 “갱 역할로 할리우드행이 목표다. 꿈은 크게 잡는 거 아닌가. 하하.”

아누팜(왼쪽)과 김범진 배우가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한대욱 기자 door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