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박종오 기자
2014.10.23 06:00:00
"관리비 月 100만원…노인들 부담 커"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2007년 서울 은평구에 들어선 S아파트. 일반 공동주택에 고령자를 위한 복지 시설을 결합한 총 137가구 규모의 이 ‘실버주택(노인복지주택)’은 입주자가 작년 말 기준 16가구에 불과하다. 일반에 분양했던 100가구가 모두 미분양된 것이다. 공급업체 관계자는 “공급면적 119㎡형 분양가가 4억 5000만원을 넘고 식대 등 서비스를 포함한 관리비도 월 100만원을 웃돌아 입주자의 주거비 부담이 크다고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불과 4년 뒤인 2018년부터 고령사회(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 14% 이상)에 본격 진입하는 우리의 노인 주거복지 정책은 여전히 미흡하다. 노인조차도 외면하는 실버주택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전국에 건립된 노인복지주택은 모두 25개 단지, 4761가구다. 2009년 19개 단지에서 4년 간 불과 6곳이 더 들어서는 데 그쳤다. 전체 공급 주택 중 입주를 마친 것도 4139가구(87%)에 불과하다. 여전히 600가구 이상이 빈집으로 남아있는 셈이다. 서울에 공급된 1902가구(분양 1175가구·임대 727가구)는 1717가구(분양 830가구·임대 887가구)만 주인을 찾았다. 분양 주택의 경우 3채 중 1채가량이 팔리지 않은 것이다.
노인복지주택이 시장의 냉대를 받는 원인은 잘못 설계된 제도에 있다. 노인복지주택은 노인복지법상 양로시설, 노인공동생활가정과 같은 노인주거복지시설의 하나로 1989년 국내에 첫 도입됐다. 일반 아파트에 노인에게 필요한 복지 서비스를 유료로 제공하는 별도의 부대시설을 갖춘 ‘주택+복지’ 구조다. 일반 분양은 1997년부터 허용됐다.
문제는 운영 방식이다. 노인복지주택은 민간 사업자가 주택을 지으면 입소자가 주거비 외에 고액의 복지 서비스 비용을 직접 부담하는 구조다. 정부 보조를 최소화하고 민간이 자체적으로 노후 복지를 해결토록 한 것이다. 이렇다 보니 부유층 노인이 아니면 사실상 입주 자체가 어려운 형편이다. 집 한 채당 월 관리비가 100만원을 넘는 곳이 흔하기 때문이다.
사업자의 초기 투자비 부담을 덜고 주택 건립을 활성화하고자 허용한 일반 분양은 되레 부작용을 낳았다. 노인복지주택은 각종 건축 특례가 적용되는 도시계획시설로 분류된다. 이 점을 노려 개발업체가 땅값이 싼 자연녹지 등을 사들여 분양가 상한제 같은 규제를 피해 집을 고가에 공급했다가 미분양 물량이 쌓이자 입주 자격을 속이는 등의 편법 분양이 판친 것이다. 이는 노인 입소자가 제대로 된 주거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젊은 층은 과도한 관리비를 부담하게 되는 등 또 다른 갈등으로 이어졌다.
정부의 사후 관리도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노인복지주택은 2008년 편법 분양 등 폐단을 막기 위해 규제가 강화됐다. 그해 8월 이전에 건축 허가나 사업 계획을 승인받지 않은 단지는 만 60세 이상 고령자만 거주 및 임대·매매가 가능하도록 고삐를 죈 것이다. 자녀 세대와 한집에 함께 사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규제 조항이 지금은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다. 단속 주체가 분명치 않고, 장기간 방치된 악성 미분양 물량이 쌓인 마당에 정부 원칙만 강조하기도 어려워서다.
전문가들은 애물단지가 된 노인복지주택의 대안으로 ‘세대 공존형’ 주택을 제시한다. 부모와 자식 세대가 평면이 효율적으로 분리된 집에서 동거하거나, 도심 내 단지에 고령자 주택과 분양주택을 함께 배치한 공유형 주택이 이런 유형에 속한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일본에서는 이미 흔한 주거 모델이다. 김찬호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세대 공존형 주택은 노인의 고립을 막고 젊은 세대는 정부 보조를 받아 임대료 부담을 덜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이런 주택이 도입되려면 국내 아파트에 적용되는 획일적인 주택공급규칙을 개선하고 고령자 주택을 꺼리는 사회적 인식도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