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보다 대화' 케네디 리더십

by김인구 기자
2014.03.06 07:05:00

서거 50주년 맞아
핵실험·냉전시대 종식시킨 소통법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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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F. 케네디의 위대한 협상
제프리 삭스|352쪽|21세기북스

[이데일리 김인구 기자] “핵실험 금지협상은 오랫동안 동서불화의 상징이었다. 이 조약이 하나의 상징이 될 수 있다면… 인류의 오래된 평화추구의 과정에서 하나의 역사적 전환점이 될 것이다”(1963년 7월 26일 부분적 핵실험 금지 조약에 관한 대국민 연설 중).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은 1961년 1월 20일 역대 최연소로 제35대 대통령에 취임해 1963년 11월 22일 텍사스 댈러스에서 암살되기까지 불꽃같은 인생을 살았다. 대통령 재임기간은 불과 2년 10개월에 불과했으나 동서갈등이 최고조이던 시대에 냉전을 종식시키고 세계평화에 이바지한 인물로 평가된다.

케네디는 누구보다 공산주의에 반대했지만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세계평화를 위해 공산권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전쟁과 핵의 공포에 휩싸인 국제정세 속에서 그는 “방어를 위한 무기경쟁은 더 큰 위기를 불러오기 때문에 양국 간 적개심을 해소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며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총과 핵 대신 소통과 대화, 설득만이 위기에 놓인 세계를 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특별자문관이자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저자는 바로 이 점에서 케네디의 리더십이야말로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소통의 리더십이라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케네디 서거 50주년을 맞이해 1962년 10월부터 반핵실험조약이 성사된 1963년 9월까지 케네디가 보여준 리더십을 면밀히 분석했다.

핵심은 그의 재임 마지막 해인 1963년 네 차례의 ‘평화연설’에 잘 나타나 있다. 대표적인 건 그해 6월 10일 아메리칸대학 졸업식 연설이었다. 널리 퍼져 있는 비관론에 맞서 소련과의 평화가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런 협상에서 새로운 출발이 필요한, 유일한 중요 분야는 핵실험을 불법화하는 조약”이라며 “아주 가까우면서도 멀리 있는 이 조약의 체결은 무기분야의 소용돌이식 확대경쟁을 억제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연설은 미·소 간 상호혜택이 가능하다는 공통적 인식을 이끌어냈다. 이어 아일랜드 의회 연설(6월 28일), 제18차 유엔총회 개회 연설(9월 20일) 등에서도 소련에 지속적인 평화의 메시지를 보냈다.

케네디의 평화추구 캠페인의 핵심은 소통이었다. 미국 동맹국들과 보수적인 정계, 국민적 지지는 물론 적수인 흐루쵸프를 향한 끊임없는 소통으로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뒤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