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준기 기자
2024.07.08 05:50:00
[이데일리 이준기 산업에디터] 올해 2분기 삼성전자의 잠정실적은 실로 반갑다. 매출 74조 원·영업이익 10조 4000억 원. 시장 예상을 뛰어넘은 숫자다. 영업이익은 역대 2분기로는 최대 실적으로, 1년 전과 비교해 15배가 늘었다. 이 수치가 10조 원대를 넘어선 건 재작년 3분기 이후 7개 분기 만이다. 시장도 환호했다. 잠정실적 발표날인 5일 주가는 3% 가까이 급등하며 52주 신고가를 갈아치웠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게 언제나 그 실체를 곧이곧대로 반영하는 건 아니다. 사실 삼성전자의 이번 실적은 착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저 인공지능(AI) 광풍발(發) 메모리 반도체 호황기에 몸을 실었을 뿐, 이 상황이 지속할 것으로 생각한다면 착각일 수 있다. 작년에도 체감했듯이 호황기가 저물면 다시 시련에 직면할 게 뻔하다. 게다가 앞으로 그 사이클의 골은 더 깊어지고 주기는 짧아질 게 자명하다. 지금 삼성전자의 ‘어닝 서프라이즈’ 실적을 놓고 축포를 쏘아 올릴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삼성전자의 ‘오르락내리락’ 실적은 경기에 크게 좌우되는 메모리 의존도가 크다는 데서 비롯된다. 이를 타개하고자 시스템·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에 힘을 쏟고 있지만, 성과는 여전히 미진하다. 점유율·기술력에서 파운드리 1위인 TSMC의 아성은 더욱 높아졌다. 어디 그뿐인가.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내준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선 여전히 맥을 못 추고 있다. 이미 1년이 다 돼가는데도, 엔비디아에 납품하지 못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그새 후발주자인 미국 마이크론의 HBM 기술력은 삼성전자의 턱밑을 겨눌 정도로 치고 올라왔다.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건 삼성전자가 ‘DS(반도체) 전영현 체제’를 가동하면서 HBM 개발팀 신설 등 주도권 확보를 되찾기 위해 최근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했다는 점뿐이다.
앞으로 펼쳐질 삼성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은 말 그대로 ‘가시밭길’이다. 중국 정부의 대규모 보조금을 바탕으로 한 중국 업체들의 기술 추격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집권 2기는 그 자체만으로 삼성을 비롯한 우리 재계 전반에 불안감을 조성하기 충분하다. 무엇보다 명분도, 실리도 없는 삼성전자 노조의 무분별한 ‘자해행위’ 파업과 마치 이에 맞장구를 치듯, 거야(巨野)의 노동조합법 개정안(노란봉투법) 재추진은 삼성의 경쟁력을 갉아먹을 최대 리스크가 될 게 뻔하다.
지금 이 시점 글로벌 반도체 기업 중 정부 보조금 없이 오직 인재·기술력만으로 경쟁에 나선 건 삼성전자·SK하이닉스뿐이다. 이 같은 악천후 속에서도 두 기업은 HBM을 넘어 차세대 반도체로 꼽히는 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CXL)·지능형반도체(PIM) 등의 미래 경쟁에서도 버텨내야만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삼성의 이번 실적을 두고 자만에 빠져선 안 된다. 노조는 자중해야 하며, 경영진은 혁신을 위한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정치권과 정부는 ‘통계의 함정’에 빠지지 말고, 국가대항전이 된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우리 기업들이 이겨낼 수 있도록 묘수를 짜내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