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 자본요건 상향' 방향 맞지만…단계적 올려 공급절벽 막아야

by박지애 기자
2024.02.22 05:00:00

정부, 해외사례 연구용역 다음달 발표
시행사 자기자본 5~10%뿐… 빚으로 돌려막는 사업구조 문제
"자본요건 급격히 올리면 시장 충격 착공 줄어들 것"

[이데일리 박지애 김아름 기자] 정부가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대한 제도개선을 추진중이다. 시행사의 PF 추진시 자기자본비율을 20%까지 높이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업계는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는 방향성에 공감하면서도 PF 사업 축소와 주택 공급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상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자본력없는 시행사, ‘줄도산’ 위기 높여

21일 관련업계 및 정부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가 한국개발연구원(KDI)·조세재정연구원·국토연구원·한국부동산원 등에 맡긴 부동산 PF 자금 조달과 관련한 해외 사례 조사 연구용역 결과가 오는 4월 나올 예정이다. 이와 함께 기재부와 국토부 그리고 KDI는 관련 TF를 꾸리고 실태나 현장상황을 공유하고 해외 사례 등에 대한 스터디를 시작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일단 연구진을 만나 현장 목소리를 전달했는데 미국, 일본 등 사례를 중심으로 방향성을 잡아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국내 부동산 PF가 시행사 자기자본은 총 사업비의 5~10%만 확보한 채 대출을 일으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보고 있다.

앞서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달 21일 한 TV 프로그램에서 시행사의 자본요건 강화를 시사하기도 했다. 최 부총리는 “선진국의 PF는 기본적으로 땅은 자기 자본으로 사고 건물을 짓거나 사업을 할 때 금융을 일으키지만, 우리나라는 돈이 100 든다고 가정하면 5% 정도만 자기 돈으로 하고 나머지 95%는 대출을 일으켜서 땅부터 산다”고 지적했다.

이후 정부가 시행사의 자기자본을 20% 이상으로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국토부 관계자는 용역결과가 나와야 한다며 “아직은 시행사의 자기자본 비중에 대한 수치를 거론할 단계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국내 PF 구조개선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정부와 전문가 모두 입을 모아 강조하고 있다.

이보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부동산 PF는 구조적으로 시공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건설사에 자금경색이 발생하면 상대적으로 양호한 사업장이나 기업까지 위험이 전이될 가능성이 있다”며 “브릿지론이나 본 PF 대주단은 시공사의 신용등급과 시공능력평가순위 등을 고려해 대출 여부를 결정하고 시공사의 책임준공이나 조건부 채무 인수를 요구하고 있어 위험이 확산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행사가 영세하다 보니 금융기관의 PF 대출 심사 기준은 공사를 하는 시공사가 얼마나 신용도가 있느냐에 무게가 실리는 구조다. 최근 워크아웃에 들어간 태영건설의 경우도 공사비 및 대출 원리금 부담으로 한 PF 사업장이 중단되자 채무보증을 선 태영건설이 막대한 빚을 떠안게 됐고, 다른 사업장에 연이어 영향을 미치게 된 대표적 사례다.

정부가 부동산 PF 구조 개선을 위해 스터디를 하고있는 미국의 경우 시행사들의 초기 자본 등 설립요건이 우리나라보다 까다롭다. 국내 시행사들은 법인 3억원, 개인 6억원 등의 요건만 갖추면 부동산개발업자로 등록이 가능하며 나머지 자금은 금융기관의 브릿지론을 이용한다. 반면 미국은 시행사가 유한책임회사(LLC)를 구성해 사업비의 20~30%의 자본금을 마련한다.

이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PF는 △시행사의 낮은 자본력 △본 PF 대금으로 브릿지론 상환 △수분양자 자금을 공사비로 사용 △시공사의 신용도 의존 등 구조적 문제로 부동산 경기 하락 시 부실이 발생하기 쉽다”면서 “정책당국은 시장참여자의 유인을 잘 이해하고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PF 시장구조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자기자본 20% “단계적으로 상향해야”

다만 우리나라 부동산 건설 현실을 고려해 당장 급격하게 시행사의 자기자본을 늘리기보단 단계적으로 상향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김승배 한국부동산개발협회장은 “부동산 사업을 하려고 하는 개발사들의 자본비율을 늘리라고 하면 당분간 사업은 멈출 수 밖에 없다”라며 “자본비율을 20%로 올리면 대지비 절반 이상을 자기자본으로 구매해야 하는데 이건 공공택지라도 어렵다”고 말했다.

부동산 PF 리스크로 가뜩이나 착공이 줄어들고 주택시장 공급 가뭄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자기자본 비율을 갑자기 상향하면 공급 감소가 더 가속화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부터 주택 공급이 줄어들면서 정부에서 주택 공급 확대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당장 자기자본 비율을 올리면서 PF 시장 안정화를 추구하겠다고 하면 주택 공급 정책에 반하게 되는 것”이라며 “시장 온도에 따라 안정성인지, 민간 시장 참여 활성화 일지 기조를 정하고 정책을 일관되게 가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시행사 자기자본 비율 상향 조정에 앞서 금융회사의 관련 정보 공개를 투명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형범 대한주택건설협회 정책관리본부장은 “현재 금융회사의 PF 총 규모나 연체률 부실 등의 자료가 주기적으로 공개되지 않는데, 이런 부분을 투명하게 하고 자금 조달과 관련해서도 전문가들이 사업성 평가를 보다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부동산 개발 펀드나 리츠 등 금융권 외에 자본이 들어갈 수 있는 금융 구조 선진화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