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내부통제 강화에…"CEO연좌제?…신사업 개척에 몸사릴 듯"

by이명철 기자
2023.06.23 06:00:00

내부통제 개선안, 임원별 책임 나눈 ‘책무구조도’ 작성해야
CEO, 시스템 문제 발생하면 책임지도록 관리 의무 주어져
금융권 “CEO 연좌 책임, 제재 우려에 신사업 주저할 수도”

김주현(오른쪽에서 2번째) 금융위원장이 2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금융위원장-금융협회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융위)
[이데일리 이명철 노희준 기자]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펀드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 우리은행 700억원 횡령처럼 대규모 금융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내부통제 조치가 시행된다. 금융회사 내 업무별로 책임자를 지정함으로써 사전 예방 활동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금융권은 정책 목표에는 공감하면서도 이번 내부통제 개선안이 사실상 최고경영자(CEO)에게 모든 책임을 맡기는 형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내부통제를 강화해도 펀드 등의 불완전판매나 예기치 않은 환매 사태 등을 막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22일 금융권 협회장 간담회를 열고 약 10개월 동안 준비한 ‘금융권 내부통제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금융위가 내부통제 제도 개선을 추진한 이유는 그동안 불거졌던 대규모 펀드 환매·손실 사태와 임직원 횡령 사건 등 소비자 피해를 야기할 금융사고가 잇따라 발생했기 때문이다. 금융사고를 막으려면 철저한 금융회사 내부통제를 거쳐야 하는데 현 제도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이에 금융회사가 내부통제 의무를 적극 이행토록 하는 개선안을 마련했다.

개선안에 따르면 금융회사 대표이사는 각 임원별로 내부통제 책임을 나눈 책무구조도(responsibilities map)를 작성토록 했다. 책임 대상자는 ‘C레벨’로 분류되는 지배구조법상 임원이다. CEO를 비롯해 최고리스크책임자(CRO) 등이 들어가며 대형은행 기준으로는 20~30명 가량이다.

금융사고가 터지고 난 후 책임 소재를 따지는 게 아니라 미리 담당을 정하는 방식이다. 금융사고가 발생해 제재 등 조치에 들어갈 때도 “알 수 없었다. 몰랐다”고 변명할 것이 아니라 “이러이러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소명하는 절차를 밟는다는 게 정책 목표다.

각 업무에 대한 내부통제 책임은 담당 임원이 지게 되지만 대표이사는 내부통제 총괄 책임자로서 역할을 맡는다. 기존에는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가 있는데 앞으로는 각 임원의 통제 활동을 감독하는 총괄 관리의무가 추가로 부여된다.

책무구조도 개념도. (이미지=금융위)
결국 금융회사 CEO는 금융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에서 회피하기가 어려워진다. 현행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에 따르면 금융회사는 내부통제를 마련해야 한다고만 규정해 책임 영역이 불분명했다는 게 금융당국 판단이다. 이에 대규모 금융사고가 발생해도 CEO는 ‘내부통제 미흡에 대한 징계 근거가 없다’며 제재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CEO에 대한 관리의무가 주어지면서 금융회사 내부통제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CEO 또한 제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위법행위에 대한 제재 규정에 따르면 행위자만 처벌하는 게 아니라 감독자와 보조자까지 처벌한다”며 “책무구조도상 임원이 최종 (책임지지만) 시스템적 실패가 일어났다면 CEO가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이 내부통제 제도 개선을 추진하면서부터 금융권에서는 ‘금융판 중대재해법’이라는 반발이 나오기도 했다. 사업장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CEO를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과 유사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개선안은 내부통제 사고 시 무조건 책임을 CEO에게 지우는 방안보다는 한발 물러섰다. 다만 CEO가 최종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경영 활동에 제약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게 업계 반응이다.

한 은행의 준법감시부 직원은 “그동안 은행 CEO가 성과 창출에만 치중하던 측면이 있어 이번 개선안이 도움이 될 수는 있을 것”이라면서도 “CEO가 책임져야 하는 분야가 명확하지 않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혼란을 부를 수 있다”고 예상했다.

금융권 또다른 관계자는 “각 분야 전문가인 C레벨(임원)을 배치해 의사결정 권한과 책임을 줬는데 별개로 CEO에도 연좌책임을 지우는 것”이라며 “(제재를 우려한) 리스크 때문에 신사업 개척 등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게 된다”고 우려했다.

근본적인 금융사고를 막기 위해선 책임 소재를 가릴 뿐 아니라 근본적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한 은행 직원은 “은행 지점에선 ‘100원짜리’ 하나만 없어도 안될 정도로 철저히 시재 검사를 하지만 횡령 사고가 번번이 발생하는 게 현실”이라며 “내부통제가 ‘만병통치약’이 아닌 만큼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은행의 임원은 “펀드 같은 상품은 금융투자업계에 비해 은행이 상대적으로 불완전판매 또는 내부통제가 미약한 것이 사실”이라며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고도 제언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오랫동안 내부통제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문제가 있던 만큼 이에 대한 조치는 필요해 보인다”며 “제도의 실효성 제고와 보완 방안은 향후 법제화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찾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