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지현 기자
2022.12.26 06:01:13
2004년 日 연금개혁 학자로서 주도
韓·日 비슷하지만 다른 상황 난관도
“개혁 실마리 정치서 찾아라” 조언
[도쿄=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2004년 일본의 연금개혁은 전문가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패러다임의 전환이었기 때문이다…한국도 이 같은 시도가 필요하다.”
지난 20일 일본 도쿄의 한 식당에서 한국 기자들을 만난 겐죠 요시카즈 게이오대 상학부 교수는 한국의 국민연금 개혁에 대해 이같이 조언했다.
겐죠 교수는 일본에서 사회보장심의회, 사회보장국민회의, 사회보장제도개혁추진회의위원 등을 역임하는 등 일본에서 손꼽히는 사회보장 전문가다. 2004년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후생연금 개혁 당시 상황에 대해 묻자 그는 패러다임 시프트에 대해 운을 뗐다.겐죠 요시카즈 게이오대 상학부 교수가 일본의 연금개혁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 저출산 고령화 심화 속 목 끝까지 차오른 연금개혁
일본은 합계출산율 하락과 장기 경기침체에 따른 경제성장률 하락 등으로 연금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지고 있었다. ‘연금을 납부하고 있지만, 나중엔 못 받을 수 있다’는 의심이 젊은 세대에 확산하면서 연금개혁에 대한 분위기가 고조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재정안정화 목표 보험료율을 2004년의 13.58%에서 매년 0.354%포인트씩 인상해 2017년 18.3%로 올렸다. 이후 보험료율을 이 수준(최고보험료율)에서 고정시켰다. 또 스웨덴과 이탈리아에서 도입한 자동안정화 장치(automatic stabilizer)를 벤치마킹해서 2004년에 인구와 노동시장의 변화를 반영해 자동으로 연금액을 조정하는 거시경제 슬라이드제를 도입했다.
겐죠 교수는 “당시 연금개혁을 하려면 보험요율을 높이거나 받는 수준을 낮추거나 지급개시연령을 늦추거나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며 “그런데 이 3가지를 건드리지 않고 거시경제 슬라이드를 적용했을 때 최적의 연금 효과가 나타난다는 걸 알게 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거시경제 슬라이드 도입 후 매년 연금액을 조정할 때 후생연금 가입자 수가 감소할수록, 그리고 기대여명이 증가할수록 연금 인상률을 낮춰 지출을 억제토록 했다. 이를 통해 정치적 개입 없이도 기대여명 증가와 노동시장 상황 악화가 연금 재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제거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후 일본 연금은 보험료율 올리면서 수령금액은 단계적으로 내리는 ‘더 내고 덜 받는 연금 구조’를 완성했다.
그는 “2004년 개혁 당시엔 패러다임 전환이었기 때문에 전문가도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연금 관계자도 이해하는 데 10년이 걸리기도 했다. 그런 분들을 가르치고 한 게 내 역할이었다”고 말하며 웃었다.
정치적 결단必…정년연장 논의 병행해야
일본은 현재 성공적인 개혁을 이룬 손꼽히는 나라가 됐지만, 개혁 이전 상황은 막막했다. 일본은 5년마다 재정계산을 하고 다음엔 얼마까지 올리겠다고 정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제대로 시스템이 가동되지 않았다. 겐죠 교수는 “정치가 보험료 인상을 차단했기 때문”이라며 “그때부터 연금이 정치와 독립해 균형을 회복할 수 있게 하는 게 필요하단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치인들도 연금개혁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표심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에 선뜻 나서지 못했다. 실제로 슈뢰더 독일 총리와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연금개혁을 추진한 뒤에 정권 교체를 겪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한 것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였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2001년 잃어버린 일본의 10년을 끝내겠다는 개혁적 캐치 플레이를 내걸고 총리에 당선됐다. 겐죠 교수는 “당시 총리 지지율이 높았다”며 “개혁안을 완벽하게 이해한 거 같지 않았지만, 필요하다고 봤고 그는 법안을 통과시킬 힘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자신이 자민당 소속임에도 자민당에 피로감을 느끼는 대중을 위해 자민당 개혁을 공헌하며 당내 야당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그는 이같은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연금개혁을 단번에 밀어붙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당초 연금 개혁에 5년 정도 걸릴 거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개혁안은 2~3년만에 통과됐다. 그는 “당시 그의 편을 들어줄 사람이 없었을 정도로 기반이 없었음에도 손해 볼 게 없다는 생각에 치밀함이 더해져 (개혁안 통과가)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