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배용 이사장 "문화·역사 담은 전통한지, 세계화해야죠"[만났습니다①]
by이윤정 기자
2022.03.22 05:30:00
'전통한지 유네스코 등재 추진단' 맡아
"서양서도 견고하고 오래가는 한지 주목"
관심 갖고 애용해야 살아날 수 있어
'종가문화'도 유네스코 추천하고파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한지를 사용했기 때문에 우리 문화와 역사가 거기에 다 기록돼 있어요. 수백년 동안 보관되고 있는 ‘훈민정음’이나 ‘조선왕조실록’도 한지를 사용했죠. 이렇게 자랑스러운 우리 유산을 당연히 우리가 세계화해야죠.”
한국의 산사와 서원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던 이배용(75) 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 이사장이 이번엔 ‘전통한지’의 세계화를 위해 발벗고 나섰다. 지난해부터 ‘전통한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추진단’을 맡아 각종 학술포럼과 현장 방문 등을 통해 한지를 살리기 위한 범국민 운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1년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을 시작으로 판소리, 강릉 단오제 등 21건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한지가 유네스코에 등재된다면 22번째 인류무형문화유산이 되는 셈이다. 최근 서울 마포구 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 사무실에서 만난 이배용 이사장은 “한지는 역사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옷과 신발을 만드는 등 산업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며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소중한 전통 유산이 사람들의 인식에서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 이 이사장은 “한옥, 한식, 한복 등 일명 ‘한스타일’이라는 측면에서 한지는 한류와 일맥상통한다”며 “예부터 장 담글때나 약지도 한지를 썼는데 한스타일끼리는 다 연결이 된다”고 부연했다(사진=이영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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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이 지나도 쉽게 변하지 않는 한지는 닥나무를 베는 과정부터 섬유화 과정까지 가내수공업을 통해 완성된다. 닥나무를 베고, 찌고, 삶고, 말리고, 다시 삶고, 고르게 섞고, 뜨고, 건조하기까지 한지장의 아흔아홉 번 손질을 거쳐야 하는 수작업이라 옛날 사람들은 ‘백지(百紙)’라고도 불렀다.
“한지만큼 자연친화적인 게 없어요. 기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인간의 정성과 노력으로 만들어내는 공동체 작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죠. 혼자서 닥나무를 심고 베끼고 이런 공정과정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예전에는 온 가족이 총동원됐다고 해요. 제작 과정에 모두의 협력이 있었다는 걸 우리의 역사 속에서 배울 수 있죠.”
한지의 우수성은 세계도 주목하고 있다. 2018년 이탈리아 국립기록유산보존복원중앙연구소(ICPAL)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1505년 제작한 자필 노트 ‘새의 비행에 관한 코덱스(Codex on the Flight of Birds)’ 복원에 한지를 사용했다. 로마가톨릭 수도사 성 프란체스코의 친필 기도문, 6세기 비잔틴 시대 복음서 등도 모두 한지로 복원됐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막시밀리안 2세 책상’ 손잡이 복원에 한지를 썼고, 세계 여러 도서관에서도 문서 복원에 한지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서양에서도 견고하고 오래가는 우리의 한지를 찾고 있습니다. 중국의 선지는 2009년에, 일본의 화지는 2014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가 됐어요. 한지는 우수한 품질에도 불구하고 유네스코 등재를 시도조차 하지 않았죠. 다른 나라와의 ‘차별성’보다는 한지만의 ‘특별성’에 주목해야 합니다.”
한지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민간과 정부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감사장과 임명장, 교과서의 앞 뒷면을 한지로 만드는 등 학생들이 한지에 대한 체화된 인식을 갖고 자라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정부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이다. 민간에서는 우리 것에 애정을 갖고 활용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 민족이 우리 것을 사랑해줘야 세계에 당당하게 내놓을 수 있습니다. 우리 것을 하찮게 생각하면서 남보고 알아달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한지는 장인들만의 일이 아니고 남의 일이 아닙니다. 함께 관심을 갖고 애용하고 격려해줘야만 살아날 수 있습니다.”
이배용 이사장은 경상북도 상주시에 위치한 한국한복진흥원의 자문위원장도 맡고 있다. 최근 중국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치르며 불거졌던 ‘한복 공정’ 논란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었다. 이 이사장은 “한복 선의 아름다움과 색감은 어느 나라 의복도 못 따라간다”며 “한민족 역사의 원류를 따라가다 보면 한복은 당연히 우리의 것이고, 우리가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에 소수민족인 조선족이 많다고 해서 한복이 자기네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 신자가 많다고 해서 기독교가 우리 것이 아닌 것과 같은 맥락이죠. 서로 공유할 건 하고 그 나라의 전통은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또 다른 문화 공정을 예방하기 위해 한복을 자연스럽게 일상에서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인식의 확산이 중요합니다.”
한지 다음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하고 싶은 건 한국의 ‘종가문화’다. 종갓집은 서원과 같이 사당과 안채, 사랑채 등을 포함하고 있다. 몇백년 간 유지돼 온 종가문화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배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개발논리에 부딪혀 종가가 흐트러지면 귀중한 전통유산을 잃어버리게 된다”며 “논밭에는 산과 어울리는 한옥이 있어야 외국에서 봤을 때도 아름다운 우리 문화를 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질이나 권력보다 더 높은 것이 문화라는 게 이 이사장의 지론이다. 그는 “우리의 유산이 세계 속에 우뚝 설수록 국가의 문화적인 품격을 높이고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며 “국가와 국민이 함께 힘을 모아 우리의 소중한 전통문화가 미래 유산으로 전승되는 작업을 부단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47년 1월 서울 출생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이화여대 인문대학장 △제13대 이화여대 총장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장 △한국대학교육협의회장 △국가브랜드위원장 △한국학중앙연구원장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위원장 △한국여성사학회장 △조선시대사학회장 △영산대학교 석좌교수 △코피온 총재 △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