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실패 조롱받던 日…한국보다 빠른 위드코로나 배경은[김보겸의 일본in]
by김보겸 기자
2021.10.03 09:32:35
퇴임한 스가의 선물..."차기정권 안정적 운영 위해"
긴급사태 선언으로 경제에 타격·고객갑질 피로도↑
PCR 검사, 8월 23만건→10월 8만건으로 줄여
6개월 뒤 경기회복 기대…음식점에선 인력 확충
| 일본이 위드 코로나로 방역 체계를 전환한 첫 주말인 지난 2일 한 가족이 카나가와 해변을 찾은 모습(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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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일본이 ‘위드 코로나’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첫 주말을 맞았다. 반년 만에 전국에 내린 긴급사태와 중점조치를 전면 해제하자 일본 곳곳에선 활기가 돌았다.
교토에선 ‘고깃집 백신 접종’이 이뤄졌다. 한 야키니쿠 가게가 백신 접종소로 지정되면서 2일 하루에만 200여명이 이곳을 찾아 백신을 맞았다. 길어진 긴급사태로 올 들어 14일밖에 정상영업하지 못한 곳이었다. 이 음식점 사장은 아사히신문에 “음식점에서 접종을 진행함으로써 식당 이미지를 안전한 곳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 2일 교토의 한 야키니쿠 가게에서 직원이 모더나 백신을 접종받고 있다(사진=아사히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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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아사쿠사도 활기를 되찾았다. 2008년부터 13년간 도쿄의 명물 인력거를 끌어온 우스이 마사히로(41)는 이날 “지난주보다 손님이 두 배 늘었다. 새로운 스타트를 끊은 느낌”이라며 주말 나들이객을 반겼다.
태풍도 코로나19에 지친 일본 시민들을 막을 수 없었다. 제16호 태풍 민들레가 이날 일본으로 향했지만 도쿄 긴자에선 악천후를 뚫고 거리로 인파가 쏟아져 나왔다. 오후 7시 기준으로 유동인구는 일주일 전보다 오히려 11% 늘었다.
| 도쿄 인력거꾼 우스이 마사히로 (사진=아사히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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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업계도 벌써부터 위드 코로나 효과를 보고 있다. 지난 1일 태풍 민들레 영향으로 날씨가 좋지 않은데도 불구, 하네다 공항은 이용객들로 북적였다. 가족 5명과 함께 돗토리현을 여행하기 위해 공항을 찾은 한 40대 남성은 “긴급사태 선언 해제를 기다리고 있었다”며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게 됐다”고 밝혔다.
일본항공에 따르면 9월 초반 5000명대에 머물렀던 국내선 하루 예약건수는 9월 말 5만명까지 10배가량 늘었다. 항공 관계자는 “기쁘다. (여행) 수요가 겨우 회복했다”며 “감염 예방에 힘써서 다시 긴급사태를 선언하는 사태에 이르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백신이 없었던 지난해와 같은 상황이 반복되진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일본이 위드 코로나로 방역 체계를 전환한 건 확진자가 크게 줄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지난 8월 도쿄올림픽 직후 2만5000명을 넘던 신규 확진자 수는 현재 2000명을 밑돌고 있다. 1일 기준으로 일본 신규 확진자는 1817명으로 같은날 2247명이 양성 판정을 받은 한국보다도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불과 두 달만에 확진자가 92% 감소할 수 있었던 건 단순히 백신 접종률이 올랐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일본에서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은 전체의 60%를 넘는다. 하지만 폭증하는 확진자 수를 감당하지 못해 유전자증폭(PCR) 검사 수 자체를 줄여 위드 코로나로 전환할 근거를 무리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8월 9일 23만건 넘게 진행됐던 PCR 검사는 현재 하루 10만건도 되지 않는다. 1일 기준 일본 PCR 검사 수는 8만1440건으로 같은날 한국(16만1450건)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지난달 29일 차기 자민당 총재로 선출된 기시다 후미오 전 정무회장을 축하하고 있다(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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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본은 PCR 검사를 줄이면서까지 위드 코로나로 전환한 것일까. 보수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차기 정권을 향한 스가 요시히데 총리의 선물”이라고 평가했다. 사회와 경제활동을 재개하기 위해 스가 총리가 위드 코로나라는 출구전략을 폈다는 설명이다. 비록 자신은 코로나19 대응 실패로 국민의 신뢰를 잃어 재선을 단념했을지언정, 다음에 들어서는 정권이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판단해 위드 코로나로의 방역 체계 전환을 꾀했다는 분석이다.
즉 현 시점에서 일본이 위드 코로나를 택한 건 감염이 늘어날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규제를 완화해 소비를 활성화하겠다는 전략이다. 배경에는 암울한 경제성장률이 자리잡고 있다. 올 3분기 일본의 실질 국내총생산(GDP)는 -5%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노무라종합연구소는 지난 7월부터 이어진 긴급사태 선언으로 두 달간 발생한 경제손실이 5조7000억엔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일본 총무성의 노동력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 음식 및 숙박 등 대면 서비스업에서 최대 60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일본 정부가 위드 코로나로 방역 체계를 전환한 데에는 차기 정권에서 감염자가 다소 늘더라도 경제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규제를 풀어 개인과 기업 활동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계속된 긴급사태 선언으로 높아진 국민 피로감도 위드 코로나 전환에 한 몫 했다. 특히 서비스업 종사자들을 향한 고객의 폭언과 폭행 등 ‘카스하라(カスタマ+harassment)’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일본의 산업별 노동조합인 UA젠센이 작년 서비스업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46.5%는 “코로나19 이후 카스하라가 늘었다”고 응답했다. “줄었다”고 답한 이들은 3.3%에 그쳤다.
카스하라 피해 경험자 30% 이상이 마스크의 결함이나 가게 안에서의 마스크 착용 거부와 관련해 괴롭힘당했다고 답했다. 장기화한 코로나19 사태로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고충은 일본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미국에서도 손님에게 마스크 착용을 요구한 점원과 승무원이 폭행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최근에는 백신 접종증 제시 요구를 둘러싼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이처럼 일본은 코로나19로 황폐해진 경제와 심리를 회복하기 위해 위드 코로나를 택했다. 외식 및 서비스 업계에선 위드 코로나로 인해 수요 회복을 기대하며 인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일본 이자카야 체인업체인 와타미는 고용을 유지하고 순차적으로 영업을 재개하며 올해 안에 인력 100명을 채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다른 이자카야 체인 츠카다노조 역시 직원들에게 닭꼬치나 초밥 등 일식 장인들의 연수를 받게 하며 직원 교육에 나섰다.
업계에선 6개월 뒤 위드 코로나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 기대를 걸고 있다. 쿠로스 야스히로 로열홀딩스 사장은 “내년 4월쯤 소비가 전환점을 맞을 수 있을 것”이라며 “단숨에 소비활동이 활발해지진 않더라도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