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법원 '우클릭' 나선 트럼프…대선 변수 급부상

by김정남 기자
2020.09.27 07:40:41

트럼프, 연방대법관 후임에 코니 배럿 지명
진보의 아이콘 빈 자리 채울 보수 성향 판사
공화당, 대선 전 청문회 등 인준 마무리 계획
민주당 반발…"정권 바뀌면 지명 철회할 것"
11월 대선전 한 달 남짓…주요 변수 급부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고(故)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의 후임에 에이미 코니 배럿(오른쪽) 제7연방고법 판사를 지명하기로 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제공)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고(故)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의 후임으로 에이미 코니 배럿(48) 제7연방고법 판사를 지명했다. 민주당의 강한 반발을 딛고 ‘진보의 아이콘’ 빈 자리를 보수 성향 법조인으로 채우려는 것이다. 대선이 한 달 남짓 남은 상황에서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배럿 판사를 연방대법관 후임으로 지명한다고 밝혔다. 배럿 판사는 상원의 인사청문회 등 인준 절차를 거쳐야 대법관직을 수행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 자리에 배럿 판사와 함께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배럿 지명자는 누구보다 뛰어난 업적과 뛰어난 지성, 훌륭한 자격, 헌법에 대한 굽히지 않는 충성심을 지닌 여성”이라고 소개했다.

배럿 판사는 고 안토닌 스캘리아 대법관의 서기 출신이다. 모교인 노터데임대에서 교수를 역임했으며,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낙태에 반대하는 보수 성향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브랫 캐버노 판사를 연방대법관 후보로 지명할 때 마지막까지 후보군에 있었던 인물이다. 40대인 배럿 판사가 인준 절차를 거쳐 취임하면 역대 두 번째로 젊은 대법관이 된다.

배럿 판사는 이날 지명 소감에서 자신이 서기로 함께 일했던 스캘리아와 긴즈버그의 친분을 언급했다. 그는 스캘리아를 “보수주의자들의 영웅”이라고 칭하면서 “스캘리아와 긴즈버그는 서로를 강하게 비판했으나, 그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인 앙금 없이 따뜻한 우정을 유지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들의 이런 능력은 많은 영감을 줬다”며 “나의 사법 철학 역시 이와 같다”고 덧붙였다. 배럿 판사가 임명될 경우 연방대법관의 이념 분포도는 보수 6명, 진보 3명으로 보수 우위가 짙어다.



CNN에 따르면 공화당은 다음달 셋째주 배럿 판사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열고 대선 직전인 같은 달 29일 이전에 인준안을 표결에 부칠 계획을 갖고 있다. 의회조사국(CRS) 보고서를 보면, 1975년 이후 대법관 지명자 인사청문회는 상원에 지명 사실이 통보된 후 평균 43일 만에 열렸다. 공화당 계획대로라면 이번에는 그 기간이 3주일 안팎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상원 의석은 공화당 53석으로 과반 이상을 점하고 있어, 인준안 처리를 강행한다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이 조기 인선을 강행한 이유는 2000년 대선 당시 기억 때문이다. 2000년 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와 앨 고어 민주당 후보간 대결에서 투표용지 논란으로 시비가 일었는데, 보수 색채가 강했던 연방대법원이 공화당에 유리한 판결을 내려 판세를 뒤집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대선의 결과가 연방대법원에 의해 좌우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CNBC는 전했다.

이에 민주당은 강하게 반발해 왔다. 민주당은 그동안 11월 대선 이후 긴즈버그의 후임 대법관을 지명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끝내 관철시키지 못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최근 필라델피아 유세 현장에서 “내가 당선되면 트럼프 대통령의 지명은 철회돼야 한다”며 “새 대통령으로서 내가 지명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신임 대법관 인선을 둘러싼 여야간 갈등은 미국 대선의 주요 변수 중 하나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긴즈버그의 후임은 차기 대통령이 지명해야 한다는 여론이 미국 내에는 적지 않다. 워싱턴포스트(WP)와 ABC뉴스가 지난 21~24일 전국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차기 대통령이 후임을 지명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57%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