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의 미국in]"흑인여성을 러닝메이트로"…바이든의 선택은?

by이준기 기자
2020.04.26 07:00:00

4년 前 힐러리, '흑인' 부커 대신 '백인' 케인 선택…표심 싸늘
에이브럼스·해리스·데밍스·프레스리 등 4명 '흑인여성' 후보군
사실상 불가능한 '미셸 부통령 후보' 외치며 아쉬움 표하기도
바이든, 내달 1일 선발위원회 구성…'그만큼 어려운 숙제' 분...

사진=AFP
[뉴욕=이데일리 이준기 특파원] “민주당 흑인여성 부통령 후보가 나오기 위한 파티가 열릴 시간이다.”(미국 캘리포니아웨스턴 로스쿨 인디아 수지 교수)

“지금 나는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흑인여성 부통령 후보를 선호한다고 말한다. 당신 또한 올바른 흑인여성을 선택해야 한다.”(흑인 인권운동가 앨 샤프턴 목사)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조 바이든전 부통령이 ‘여성’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 지명을 공언한 가운데 당 안팎에서 ‘흑인여성’ 후보를 택해야 한다는 압박이 거세게 분출하고 있다. 가장 충성스러운 흑인 표심을 간과할 경우 2016년 패배의 전철을 또다시 밟을 수 있다는 우려 탓이다. 오는 7월 판가름 날 민주당 부통령 후보에 미 정가의 시선이 집중된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4년 전 ‘흑인’인 코리 부커(뉴저지) 상원의원은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게 자신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해줄 것을 제안했다. 2008년 ‘오바마 돌풍’을 재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그럴듯한 전략도 내놓았다. 당시 부커의 이름은 힐러리의 부통령 후보 ‘숏리스트’(압축후보군)에 오른 상태였다.

그러나 이미 흑인 지지를 등에 업고 있다고 판단한 힐러리 측은 당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꺾으려면 백인 노동자 계층의 표심이 더 중요하다고 봤다. 결국 중서부 출신의 백인남성 팀 케인(버지니아) 상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를 전격 지명하는 결단을 내렸다.

힐러리의 결정은 아직도 민주당 안팎에서 ‘최악의 한 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힐러리 측 핵심멤버였던 미니언 무어조차 NYT에 “케인은 훌륭하고 확실한 부통령 후보 자격이 있었다”고 회고하면서도, “케인과 부커 사이에는 열정의 차이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사람들이 ‘열정을 더 많이 고려했어야 하지 않았느냐’고 질책하는 건 일견 타당하다”고 인정했다. 수지 교수도 미 의회전문매체 더 힐에 “2020년 승리의 길을 보기 위해서는 2016년의 실책을 배워야 한다”며 당시 흑인 부통령 후보 배제 결정을 힐난했다.

실제 대통령·부통령 후보 모두 백인 일색인 민주당을 바라보는 흑인들의 시선은 싸늘해졌다.

2016년 대선에서 흑인 투표율이 20년 만에 처음으로 하락세로 돌아선 배경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재선으로 막을 내린 2012년의 흑인 투표율(66.6%)에 비해 7%포인트나 낮은 59.6%에 머물렀다. 2012년 오바마에게 투표한 유권자 중 9%는 트럼프에게, 3%는 제삼자에게로 돌아섰는데, 이들 대부분은 ‘흑인’이었다는 게 미 언론들의 분석이다.



현재 미 정가에서 회자되는 10여 명의 부통령 후보 중 흑인여성은 스테이시 에이브럼스 전 하원 원내대표, 카멀라 해리스(캘리포니아) 상원의원, 발 데밍스(플로리다)·아야나 프레스리(매사추세츠) 하원의원 정도다. 이 가운데 에이브럼스 전 대표와 해리스 상원의원이 선두주자급이다.

유색인종을 위한 정치단체 ‘더 피플’의 설립자인 에이미 앨리슨은 최근 “조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에이브럼스이 1위, 해리스가 2위를 차지했다”고 했다. 다만, 에이브럼스는 대통령 유고 시를 고려할 때 공직경험이 거의 없다는 점이, 해리스의 경우 이번 경선레이스에서 바이든과의 찾은 충돌로 충성심이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각각 발목을 잡는다.

최근 들어 본인과 주변인들의 ‘일축’에도 불구하고, ‘미셸 오바마’ 부통령 후보론이 자주 부상하는 배경이다.

여성과 흑인이라는 공통분모를 모두 충족하는 데다, 8년간의 퍼스트레이디 경험, 무엇보다 ‘오바마 돌풍’을 재현할 수 있다는 점은 아주 매력적이다. 2018~2019년 연속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여성’ 1위에 오른 건 그의 명실상부한 대중적 인기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바이든 전 부통령조차 “생각해 볼 것도 없이 당장 그를 받아들이겠다”고 대답한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난 그에게 백악관 근처에 다시 살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의 후보 수락 가능성이 작다는 점에 대한 아쉬움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일부 흑인 민주당원들 사이에선 온건성향이자 백인여성인 에이미 클로버샤(마이애미) 상원의원이나 그레천 휘트머 미시간주(州) 주지사가 부통령 후보가 되는 게 ‘정치적 이치’에 맞는다(make political sense)는 얘기도 나온다고 NYT는 전했다.

아직 바이든은 부통령 후보에 관한 한 ‘미셸’을 빼곤 그 누구의 이름도 입에 올리지 않을 정도로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가 내놓은 힌트는 “부통령 후보 지명의 최우선 고려 사항은 내가 믿을 수 있는 통치 파트너, 즉 ‘마음이 통하는’(simpatico)인 상대여야 한다”는 게 전부다.

바이든은 5월1일까지 ‘부통령 후보’ 선발위원회를 구성할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최종 부통령 후보는 7월에 발표될 것으로 관측된다. 역대 부통령 후보 선정이 베일에 휩싸였었던 것과 대비된다. 투명한 절차를 강조한 것으로 비치나, 그만큼 어려운 숙제임을 방증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상원의원. 사진=A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