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투자 경보음]저성장·유동성 축소…글로벌 대체투자 옥석가려진다.(종합)

by송길호 기자
2019.02.06 05:40:00

블랙록 설문, 기관투자자 절반 주식 축소, 대체투자 확대
저성장 유동성축소 올해 글로벌 투자환경 불확실 심화
기초자산 가치 하락 가능성, 자금 쏠림 고평가 논란
유동성 빠지는 올해 분기점으로 본격적인 성패 드러날 듯

[이데일리 송길호 기자] 글로벌 경기의 상승세 둔화, 시중 유동성 축소, 시장의 변동성 심화…. 글로벌 투자환경이 급변하면서 기관투자자들의 자산포트폴리오 재편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투자의 신천지로 떠오른 대체투자(Alternative assets)분야에 올해도 기관투자자들의 자금이 러시를 이룰 것으로 보여 그 파장에 관심이 모아진다.

전문가들은 대체투자 분야의 성장성에 주목하면서도 자금투입이 무분별하게 이뤄질 경우 버블 가능성이 있다며 투자과열에 따른 우려의 목소리를 제기하고 있다. 이미 경제의 성장세 둔화, 유동성 축소 기조속에 기초자산 가치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일부 자산은 고평가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전통자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며 투자대안으로 부상했던 대체투자가 저성장, 변동성 심화라는 불확실한 투자환경속에서도 지속적인 성과를 낼지 의문이다. 그동안 풍부한 유동성의 힘으로 옥석 구분 없이 성과를 냈던 대체투자분야는 ‘물’(유동성)이 점차 빠지는 올해를 분기점으로 본격적인 성패가 가려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예일대학 전경
미국 예일대 기금은 지난 30년여간 대학기금중 최고의 실적을 자랑한다. 운용자산 300억달러, 하버드대 기금에 이어 두번째 규모인 이 기금은 지난 20년간 연평균 11.8%의 수익률을 달성했다. 견인차는 대체투자였다. 기관투자의 선구자로 불리는 기금운용책임자(CIO) 데이비드 스웬슨이 일찌감치 대체투자분야의 성장성에 눈을 뜬 결과다. 대체투자 개념조차 불분명했던 1990년대초 그는 이미 운용자산의 3분의 1을 사모주식(PE)· 벤처캐피탈(VC)· 부동산 ·석유 등 대체자산에 집중 투자했다. 이를 통해 대체투자분야에서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 연평균 20%의 기록적인 수익률을 달성하게 된다. 예일대 기금은 올해도 운용 자산의 55.5% 를 대체 자산에 집중 투입할 예정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만해도 대체투자는 일부 혁신적인 투자자들의 전유물이었다. 예일대 기금처럼 일부 선구적인 투자자들만이 그들만의 노하우로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통해 그들만의 리그에서 대체투자를 비밀병기로 활용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흐름이 달라졌다. 저성장 저금리기조가 뉴노멀(new normal)로 정착되면서 주식 채권 등 기존 자산만으로는 기대수익률을 달성하기 어려워졌다. 그 결과 PE는 물론 부동산 인프라 등 리스크를 줄이면서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각종 대체자산이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여기에 예일대 기금 등 대체투자의 성공스토리가 확산되면서 대체투자는 일대 붐을 이루게 된다. 국부펀드나 연기금 등 시장의 ‘큰 손’ 중심으로 대체자산에 자금이 경쟁적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기관투자자들의 자산포트폴리오에서 대체투자 비중이 급증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분석에 따르면 2000년 이후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의 신규투자 대상 절반이 대체자산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계 톱 클래스 대형 국부펀드도 운용자산의 15%이상을 대체자산에 투입한 것으로 집계됐다. 싱가포르의 테마섹(Temasek), 아랍에미레이트의 ICD는 그 비율이 40%에 달했다.한국의 KIC는 2009년 PE를 기점으로 부동산, 인프라, 헤지펀드 등 범위를 점차 확대하며 운용자산의 14%를 대체자산으로 구성하고 있다.

연기금이나 공제회도 마찬가지다. 자산규모 644조원(2018년11월 현재)에 달하는 세계 3대 연기금 국민연금이 2015년 이후 전체 운용자산의 10%이상을 대체투자 분야에 투입하고 있다. 교직원공제회 행정공제회 등 대형 공제회도 전체 운용자산의 절반을 쏟아붓고 있다. 국내외 자본시장에서 대체투자는 이미 자산배분의 핵심전략으로 떠오른 셈이다.

자금이 꾸준히 유입되면서 성과도 나타났다. 전 세계 PE의 지난 10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12%로 같은 기간 전세계 주가 상승률(6%)의 배에 달했다.(투자회사 케임브리지 어소시에이트 분석) 부동산· 인프라의 경우에도 지난 5년간 연평균 각각 9.2%(MSCI IPD부동산 인덱스), 10.3%(프레킨 인프라 인덱스)의 수익률을 올렸다. PE에 비해 안정성이 높고 장기적으로 지속적인 현금흐름(cash flow)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부동산·인프라 분야의 실적은 PE 못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대체투자분야도 마찬가지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전체 운용수익률이 0%대(2018년 11월말 현재 0.27%)로 제자리걸음에 그쳤지만 대체투자분야는 연 6.95%로 전체 수익률을 견인했다. 2015∼2017년 3개년을 기준으로 보면 대체투자 분야의 수익률은 연 8.50%로 전체 평균(5.61%)을 크게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공제회도 지난해 대부분 연 6%대 전후의 실적을 보이며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대체투자는 통상 7∼8년 이상을 내다보는 장기투자다. 대부분 사모시장(private market)에서 거래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리스크측정이 어렵고 환금성도 약하지만 상품구조를 고객 니즈에 맞게 재구성하고 신용까지 보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수익률면에서 전통자산과의 상관관계가 낮아 경기하강기 자산포트폴리오 재편과정에서 리스크를 분산 또는 상쇄시킬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정삼영 대체투자연구원장은 “대체투자는 장기로 자금이 묶인다는 단점은 있지만 상품 구조상 주식 등 시장상황의 변동에 크게 좌우되는 고위험자산보다는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글로벌 경기의 성장세 둔화, 통상 분쟁 등 불확실한 투자환경속에서도 대체투자 분야의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블랙록(BlackRock)이 230개 글로벌 기관투자자(투자자산 7조달러 규모)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올해 기관들은 주식비중을 크게 줄이는 대신 사모주식(PE), 부동산(RE), 실물자산(Real Assets) 등 대체자산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자산포트폴리오를 재편하겠다고 답했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국민연금이 올해 기금운용계획에서 대체투자 비중을 지난해 11.4%에서 올해 12.7%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히는 등 기관투자자들은 경쟁적으로 대체투자 비중을 늘리는 분위기다.

투자자들의 자금이 쏠리면서 대체투자는 올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JP모건은 2019년 시장전망에서 대표적인 대체투자 방식인 PE투자와 관련, “그동안의 투자가 생산적으로 이뤄졌는지 의문”이라며 “자금조달이 경쟁적으로 과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A공제회의 한 CIO는 “매크로 환경의 악화로 기초자산 가격이 하락할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운용사들은 넘쳐나는 대기자금(dry powder)을 주체하지 못해 수익창출능력이 약화된 기업이나 이전엔 투자에 신중했던 자산에도 적극적으로 베팅하는 경우가 많다”며 “대체투자분야는 이미 고평가 국면에 진입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체투자에 대한 초과수요가 해당 자산의 부실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경고의 목소리를 높인다. 성장률 둔화· 시중 유동성 축소 → 대체투자 분야 기초자산 가격하락 → 자금쏠림에 따른 일부 자산 고평가, 여기에 자칫 상황이 악화되면 버블논란에 이어 부실화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정 원장은 “해외 운용사들이 해외에선 소화되지 않은 고평가된 실물자산을 많이 들여올 가능성이 있다”며 “국내 투자자들이 분위기에 휩쓸려 그대로 잡게 되게 되면 우를 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대체투자는 기본적으로 장기투자이기 때문에 불확실성과 위험요소가 많다”며 “정책리스크 등 전반적인 투자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투자리스크는 점차 높아지고 있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신성환 홍익대 교수는 “글로벌 경기가 둔화되고 전세계적으로 유동성이 줄어드는 올해 이후에도 대체투자가 여전히 성과를 낼지는 의문”이라며 “그동안은 유동성의 힘으로 대체투자 분야도 덩달아 실적이 올라간 측면이 있는 만큼 유동성이 빠지는 올해 이후부턴 본격적인 옥석가리기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주식·채권 등 공모시장에서 거래되는 전통적인 투자대상을 제외한 다른 모든 대상에 투자하는 방식. PE(사모주식), RE(부동산), 헤지펀드, 인프라, 천연자원 등 사모시장에서 거래되는 다양한 자산이 대상이다. 주식 채권 등 전통자산에 투자하더라도 공매도나 차익거래, 헷징 등 비전통적인 전략을 구사한다면 대체투자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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