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억겁의 세월이 만든 몽돌 방파제, 외로운 파수꾼이 지켜내다
by강경록 기자
2018.10.12 00:00:01
충남 태안 내파수도의 구석방파제를 찾다
안면도 본섬에서 9.7km 떨어져 있어
내파수도의 보물 ''구석 방파제''
1987년 충남 문화재로 지정돼
고 안종훈씨가 업자로부터 지켜내
| 충남 태안의 외딴섬 내파수도에는 국내 유이무이한 ‘구석(球石)’ 방파제가 있다. 구석이란 ‘둥근 공 모양의 자갈’을 뜻한다. 자갈 더미가 길게 바다로 뻗어 나가 방파제를 이루고 있다. 이런 독특한 지형으로 내파수도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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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섬은 외롭다. 망망한 바다에 홀로 서서 늘 대상을 그려야 하는 숙명 탓이다. 그래서 섬에는 아직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자연이 살아 있다. 그 섬을 찾아 충남 태안으로 향한다. 태안에는 섬이 유독 많다. 무려 114개가 있다. 이 중 유인도는 가의도·옹도·격렬비열도·내파수도 등 4개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전부 무인도다. 섬이 이리도 많으니 때 묻지 않은 섬도 많고, 섬마다 숨은 이야기도 많다. 이번에 찾은 ‘내파수도(內波水島)’에도 특별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30여년간 내파수도를 지킨 고 안정훈씨의 이야기다. 그의 이야기를 쫓아 태안으로 향한다.
| 충남 태안의 외딴섬 내파수도에는 국내 유이무이한 ‘구석(球石)’ 방파제가 있다. 구석이란 ‘둥근 공 모양의 자갈’을 뜻한다. 자갈 더미가 길게 바다로 뻗어 나가 방파제를 이루고 있다. 이런 독특한 지형으로 내파수도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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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섬 ‘내파수도’에 가다
| 충남 태안의 외딴섬 내파수도에는 국내 유이무이한 ‘구석(球石)’ 방파제가 있다. 구석이란 ‘둥근 공 모양의 자갈’을 뜻한다. 자갈 더미가 길게 바다로 뻗어 나가 방파제를 이루고 있다. 이런 독특한 지형으로 내파수도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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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유인도 중 실제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섬은 가의도뿐이다. 나머지는 주민이 아닌 등대지기나 양식장 관리직원만이 있을 뿐이다. 무인도마다 사연도 많다. 몇 군데만 소개하자면 정족도는 서해에서 가마우지가 가장 많이 사는 섬이다. 바위 위에 가마우지들이 줄지어 서 있거나 벼랑에서 다이빙하며 사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난도는 괭이갈매기 서식지로 유명하다. 조금 멀리 떨어진 격렬비열도는 최서남단의 섬이다. 초여름까지 섬 전체에 핀 유채꽃과 뛰어난 해안절경 등의 원시 자연이 보는 이를 유혹한다.
이들 섬보다 훨씬 남쪽인 안면도 맞은편에 ‘내파수도(內波水島)’가 있다. 내파수도는 예부터 중국의 상선이나 어선들이 우리나라를 오갈 때 폭풍을 피하거나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정박한 섬이다. 태안 안면도 본섬에서 불과 9.7km 떨어져 있다. 해안선 길이는 2.2㎞, 면적 0.14㎢, 해발 40m 정도의 고즈넉한 섬이다.
그렇다고 내파수도가 가기 쉬운 섬이라는 것은 아니다. 태안의 방포항에서 배로 20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주민이 거주하지 않아 여객선이 뜨지 않는다. 감성돔을 쫓는 낚시꾼만 어쩌다 찾을 뿐이다. 그렇다 보니 일반인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비밀의 섬’이 됐다.
이 섬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것이 있다. 바로 구석(球石) 방파제다. 구석을 한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공처럼 둥근 돌’이라는 뜻이다. 쉽게 설명하면 자갈돌, 즉 몽돌이다. 거친 파도에 씻기면서 둥글게 깎인 돌이다. 수천 년 세월 동안 파도에 씻기고, 폭풍에 밀려온 조약돌이 바다 쪽으로 길게 굽어져 나와 천연 방파제를 이루고 있어 서해를 오가는 고깃배들의 포근한 피항처가 되고 있다. 그 길이만 무려 300m에 달한다. 높이가 3~4m, 너비 20~40m로, 작은 고깃배나 상선이 정박하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다.
| 태안의 방포항에서 20여분 낚시배로 가면 내파수도에 닿을 수 있다. 민가 앞으로 ‘구석 방파제’가 길게 늘어서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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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만 년 쌓이고 쌓이다 ‘구석 방파제’
정부는 내파수도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 그 이유는 바로 ‘구석방파제’ 때문이다. 이 자갈밭은 실제 학명으로 해빈(海濱·beach). 본래 해빈은 모래 같은 느슨한 입자들이 해변 일부나 전부를 덮고 있는 해변을 뜻한다. 바윗덩어리로부터 큰자갈·잔자갈 등의 자갈류나 극세립 모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조개껍데기나 부스러기 혹은 제주도 우도처럼 산호부스러기 해빈도 있고, 심지어 인간이 버린 유리나 플라스틱으로 범벅이 된 해빈도 있다.
내파수도의 자갈 해빈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태안군청 직원의 설명은 이렇다. 내파수도 서북 쪽에 바위 벼랑이 있다. 북서풍이 부는 겨울에 바람과 파도가 서북쪽 벼랑의 바위를 부수고, 이렇게 부서진 바위가 바다로 떨어진 뒤 빠른 해류를 따라 뒹굴면서 해류를 따라 섬의 동남쪽 해안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바위는 부서지고, 깎이면서 둥근 자갈로 재탄생한다. 이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밀물 때 방파제 위로 난 길을 따라 산 중턱에 올라야 한다. 수면에 이는 물살로 조류가 서로 부딪히는 자리가 확연하게 드러나는데, 딱 그 자리에 자갈돌이 쌓이고 있다.
방포항을 출발한 고깃배는 20여분간 항해를 한 끝에 내파수도에 닿는다. 멀리서 보면 인공적인 선착장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배는 아무 꺼리낌 없이 섬으로 곧장 들어선다. 그러고서는 바다 위로 길게 이어진 자갈밭으로 그냥 배를 밀어붙인다. 배 바닥을 자갈에 올려서 배를 대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뱃전에 깔린 자갈이 구르면서 상처하나 없이 배를 받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방파제에 배를 대고 자갈밭에 내려선다. 사각사각 밟히는 소리, 해조음을 연주하는 조약돌들이 사뿐한 촉감으로 마중한다. 둥근 자갈을 만져보니 비단결처럼 매끄럽다. 아마도 억겁의 세월동안 파도에 씻겨 닳고 달았으리라.
◇두 노인의 희생으로 지켜낸 섬
섬을 본격적으로 둘러볼 차례다. 방파제 뒤로 난 길을 따라 언덕배기에 오르면 ‘내파수도의 파수꾼 안종훈 선생 공적비’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공적비는 어떻게 세워진 것일까. 안종훈씨는 1967년 선동규씨와 외딴섬 내파수도로 들어왔다. 객선도 다니지 않는 섬 생활이 불편해 섬 주민들이 다 떠나고 내파수도가 텅 비어 있을 무렵이었다. 안 씨는 선 씨와 내파수도에 지상낙원을 만들겠다는 꿈을 꾸었다. 두 사람은 적잖은 돈을 들여 섬에서 미역양식을 시작했다. 이렇게 번 돈으로 섬을 개발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미역 가격이 폭락하면서 이들의 꿈은 무너졌고, 고기잡이로 겨우 연명하는 고단한 생활이 이어졌다. 그 무렵, 내파수도의 구석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이 돌을 실어 내려는 이들이 섬에 몰려들었다. 이 조약돌 자체가 정원석이나 규석 원료로 상당한 경제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서였다. 이에 광업권 허가를 낸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몰려와 무차별적으로 구석을 실어나갔다. 안씨와 선씨는 온몸으로 이들을 막았다. 태안 군청에 수십 차례 진정서와 탄원서를 냈고, 급기야 안씨는 감옥까지 갔다. 이 두 노인의 외롭고 긴 투쟁은 1987년 충청남도가 구석 방파제를 문화재로 지정하면서 막을 내렸다. 이 공적비는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념해 세운 것이다.
공적비 뒤로는 산길이다. 구석 방파제가 굽어 보이는 산등성이를 넘어가면 좁고 길게 북고남저의 산자락이 엎드려 있다. 드넓은 초지에는 가을이 깊어지면서 억새들이 군락을 지어 하나둘 피어나기 시작했다. 섬을 가득 채운 억새꽃의 하얀 솜털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억새 군락 사이로 길이 뚜렷하긴 하지만, 인위적으로 조성한 산책로나 안내판은 없다. 꾸미지 않고 그냥 놓아둔 섬 정취 그대로다.
길 끝에는 또 다른 비밀을 품고 있다. 바로 내파수도 지질의 비밀을 품고 있는 다양한 암석과 지형이다. 지질 운동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희귀한 모양의 지형과 지질경관은 보는 이의 입을 떡하니 벌어지게 만들기 충분하다.
◇여행메모
△가는길=서해안고속도로 홍성나들목으로 나가서 갈산교차로에서 좌회전한 뒤 상촌교차로에서 다시 좌회전한다. 96번 지방도로를 타고 서산 A·B 지구 방조제를 차례로 건너가면 원청교차로가 나온다. 여기서 좌회전하면 길은 안면대교를 넘어 안면도로 이어진다.
△먹을곳= 꽃지해수욕장과 가까운 방포항에는 대형식당인 방포회타운(041-674-0026)이 있다. 주인이 식당과 양식업을 겸하고 있는데, 내파수도의 해삼과 전복 양식장도 이곳에서 운영하고 있다. 한상차림 메뉴를 주문하면 회와 함께 새우, 전복 등 곁들이 음식이 상 가득 차려진다. 4인 한 상에 16만 원을 받는다. 태안읍에서 한상차림 회를 내는 대표적인 곳이 서해수산(041-675-3579)이다. 싱싱한 자연산 대하와 함께 다양한 곁들이 음식을 낸다. 백사장항은 요즘 대하와 함께 꽃게가 한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