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한국인의 두통약' 쓸쓸한 명예회복

by천승현 기자
2015.07.03 03:00:00

[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한국인의 두통약’이라는 광고 카피로 유명한 ‘게보린’은 지난 몇 년간 기억하고 싶지 않은 혹독한 수난을 겪었다.

2008년 한 시민단체가 “게보린 함유 성분 중 ‘이소프로필안티피린(IPA)’이 ‘재생불량성빈혈’과 같은 혈액학적 부작용 위험이 있다”며 식약처에 안전성 검토를 요구하면서다. 이후 안전성 논란에 휩싸였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식약처 국정감사 때마다 IPA 성분이 함유된 제품의 안전성 강화를 요구하며 식약처를 질타했다. 일부 업체들이 비난을 피해가기 위해 문제의 IPA 성분을 뺀 진통제를 선보이며 발빠르게 대처했다. 그러자 게보린을 판매하는 삼진제약(005500)에 비난이 집중됐다.

논란이 불거진지 7년만인 최근 게보린은 누명을 벗었다. 식약처는 최근 발표한 의약품 재평가 결과를 통해 게보린 등의 부작용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 IPA가 혈액학적 부작용을 유발한다고 볼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

게보린 입장에서는 환호할만한 소식이지만 지난 7년간 입은 상처는 뼈 아프다. 청소년들이 조퇴를 목적으로 게보린을 많이 복용하는 사례가 있다는 소식에 게보린이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모든 의약품은 과다 복용하면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사실은 유독 게보린에만 적용되지 않았다.

지난 2011년에는 걸그룹을 게보린 광고 모델로 기용하자 청소년들에 오남용을 부추긴다고 뭇매를 맞기도 했다. 당시 “서경석은 되고 걸그룹은 왜 안되냐, 펜잘은 되고 왜 게보린만 안되냐”는 반대 여론도 제기됐지만 회사 측은 광고를 철회해야만 했다.

2012년 가정상비의약품 일부에 대해 편의점 판매가 허용됐을 당시에도 게보린은 ‘왕따’ 신세를 면치 못했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게보린이 위해성 논란이 제기됐다는 이유로 편의점 입성을 허락하지 않았다.



게보린이 안전성 시비에 휘말려있는 동안 보건당국의 대응도 미숙했다. 당초 식약처는 지난 2009년 두 차례에 걸쳐 중앙약사심의위원회를 개최하고 “IPA 성분의 사용을 금지할 정도의 안전성 문제는 없다”고 결론내렸다. 다만 오남용 방지를 위해 연령 및 연속투여를 제한하도록 허가사항을 조정했다.

삼진제약은 2011년 걸그룹 걸스데이를 게보린 광고 모델로 기용했지만 안전성 논란에 광고는 전파를 타지 못했다. 삼진제약 제공
하지만 논란이 끊이지 않자 식약처는 입장을 번복했다. 2011년 식약처는 IPA 함유 제품을 보유한 업체 실무자들을 소집하고 1년내 안전성 연구 결과를 제출하라고 통보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성 강화차원에서 해당 업체가 안전성을 입증하라”는 명분을 댔다.

이미 안전성 결론을 내렸음에도 비난을 회피하기 위해 안전성 검증을 기업에 떠넘긴 셈이다. 결국 삼진제약 등이 대한약물역학위해관리학회에 연구를 의뢰했고, 3년간의 연구 결과 게보린은 가까스로 명예를 회복하게 됐다.

식약처의 안전성 평가 결과 발표도 불친절했다. 식약처는 ‘의약품재평가결과’라는 문건을 홈페이지에 게재하면서 게보린과 사리돈에이의 효능·효과와 사용상 주의사항을 첨부했다.

게보린의 종전 허가사항을 그대로 인정한다는 내용이다. 기존의 허가사항과 달라진 내용이 없기 때문에 특별히 언급할 내용이 없다는 게 식약처의 설명인데, 오랫 동안 불거졌던 안전성 논란의 결과 치고는 허망할 따름이다.

정부는 입버릇처럼 기업살리기, 규제 합리화를 외치곤 한다. 하지만 정작 기업이 진정 원하는 것을 아직도 모르는건지, 모르는 척 하는건지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