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조선일보 기자
2007.05.05 10:08:51
[조선일보 제공] 국내 1위 포털 업체 네이버(NHN)가 요즘 행복하지 않다. 돈은 천문학적으로 버는 데 오히려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진 형국이다.
‘포털뉴스 규제 제로 지대…책임 없는 권력’(한겨레), ‘네이버 검색점유율 76%, 정보독재자? (서울신문), ‘사이버 무법 포털 그냥 안 둔다’(문화일보) 등 최근 국내 언론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포털, 특히 네이버를 비판하고 있다. 과거 ‘삼성 공화국’에 빗댄 ‘네이버 공화국’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여기에 정부까지 한몫 가세했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인지는 몰라도 공정거래위원회는 네이버의 불공정거래 혐의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고, 국세청은 네이버 창사이래 첫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다(매일경제 4월 25일자 보도). 정치권에서도 네이버 등 포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도대체 포털 서비스 네이버를 운영하고 있는 NHN 사(社)는 왜 이리 욕을 먹고 견제를 받는 걸까?
◆창업 10년만에 토종 1위로
서른 살의 열혈 청년 이해진 연구원이 네이버를 처음 창업한 시기는 1997년 11월. 불과 10년도 안됐다. 당시 IMF쇼크로 한국이 휘청거리던 때였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KAIST전산학 석사를 거쳐 삼성SDS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이해진 과장은, 회사에서 검색엔진(다량의 데이터에서 검색을 통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기술) 부문을 떼내 별도 회사를 세우자고 경영진을 설득했다. 설득은 성공했고, 이 과장은 삼성SDS 사내 벤처 1호 소(小)사장이라는 직책으로 6명의 창업동지와 함께 네이버를 설립했다.
모든 기업이 그렇듯 네이버의 초기는 가시밭길이었다. 웹 사이트를 열기는 했지만, 돈을 벌 뾰족한 방법이 없었기 때문. 99년에는 삼성SDS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와서 대기업의 보호막도 사라졌다. 이해진 사장은 “당시 광고 영업도 안되고 해서, 인터넷 광고를 많이 게재하던 모 일간지 웹사이트의 광고담당자를 만났더니, 이 담당자가 난처한 표정으로 (네이버는) 비전이 없다며 사업을 접는 게 좋겠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 올해 매출 1조원 클럽 가입
10년 전에 100만 원짜리 광고를 아쉬워했던 네이버의 성적표는 지금은 화려하기만 하다. 일단 네이버의 시가총액(주식수에다 주가를 곱한 수치. 기업 가치 산정을 할 때 제일 중요한 지표)은 최근 7조원을 돌파, 웬만한 재벌 기업을 뛰어넘었다. 코스닥 시장에서는 당연히 1등이다. 또 하루에 평균 네이버 사이트를 찾는 고객은 1600만명, 해외 법인까지 합치면 2500만 명에 이른다.
대신증권 강록희 애널리스트는 “온라인 광고 시장의 급성장을 바탕으로 올해 NHN 매출액이 8499억 원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NHN 일본과 중국법인의 매출을 합치면, NHN는 올해 국내 닷컴기업 최초로 매출 1조원 클럽 가입이 유력하다.
◆ “공짜라도 좋다. 네이버에 콘텐트만 공급하게 해달라”
네이버의 막강한 파워는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사례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그는 거의 매일 네이버 검색창에서 ‘CJ’라는 키워드를 검색해본다고 한다. 검색창에 단어만 입력하면, 신문·방송·잡지 등 모든 미디어가 생산한 CJ 관련 기사들을 한 눈에 열람할 수 있다. 과거 비서실 혹은 홍보팀 매일 아침 신문을 스크랩해서 보고하던 패턴과는 180도 바뀌었다.
네이버의 파워는 ‘검색(search)’을 통해 대중들의 미디어 소비 행태를 완전히 바꿔버린 것에 놓여 있다. 정보 생산자→ 미디어(신문·방송·라디오)→ 정보 소비자로 이어지던 과거 흐름을 정보 소비자→검색→ 미디어로 바뀌면서, 검색업체의 힘은 강해지고 정보 생산자의 위상은 급추락했다. 미국에서 유력 언론사보다 구글(Google)이 더 막강한 것과 비슷한 이치다.
언론사 입장에서는 네이버에 기사가 실리느냐 안 실리느냐가 미디어의 영향력을 가늠하는 중요 잣대가 되었다. 대기업 홍보담당 임원 A씨는 “마이너 매체에서 회사에 부정적인 기사를 쓰고, 이 기사가 만약 포털에서 주요한 기사로 처리되면, 메이저 언론에 실린 것보다 더 타격이 크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공짜라도 좋다. 우리 콘텐트를 네이버에서 받아달라”는 온라인 뉴스 회사들이 요즘 네이버를 찾아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네이버측은 “지금 수십여 매체들이 콘텐트를 공급하겠다고 하지만 회사의 정책이 결정되지 않아 논의를 중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 검색시장 77% 점유
네이버는 왜 언론과 정부 기관으로부터 집중 견제를 받고 있는 걸까. 많은 이유가 있지만, 네이버의 영향력이 자연발생적인 독과점의 단계에 접어 들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5대 포털 업체에 속하는 A사의 CEO(최고경영자)는 “요즘 포털의 영향력이 너무 커진 것 아니냐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로는 네이버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보이는 착시현상” 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시장 조사업체인 코리안클릭의 통계에 따르면 네이버의 시장 점유율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2월 네이버의 검색 시장 점유율은 77.2%를 기록,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그 동안 네이버가 다음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를 보였던 카페와 메일 서비스의 시장 점유율도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코리안클릭 유도현 사장은 “검색 분야의 강한 파워를 기초로 블로그·카페·메일·뉴스·쇼핑 등 모든 서비스에서 네이버의 위력은 더 세지고 있다”며 “국내 인터넷이 이미 제로섬(zero sum) 성격을 띠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네이버의 성장은 다른 인터넷 기업의 약세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동영상 포털 업체인 ‘판도라TV’의 김경익 사장도 “검색 시장의 우위를 통해, 네이버가 의도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하는 불공정 행위가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며 “네이버로의 과도한 집중은 국내 인터넷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 헐값에 언론사 뉴스 유통
네이버의 독점적 지위 문제외에도, 네이버가 욕을 먹는 이유는 세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첫째는 네이버에 불법 복제된 콘텐트가 많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은 네이버만의 문제가 아닌 국내 인터넷 포털업계의 전반적인 문제이다. 국내 1위 블로그를 운영중인 세계일보 서명덕 기자는 “네이버의 검색 통로를 통해 유통되는 많은 불법 콘텐트들은 결국 국내 인터넷 산업의 독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방송사·신문사 등을 포함한 콘텐트 저작권자들은 네이버 검색을 통해 불법 콘텐트가 대량 유통되는 바람에, 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입었다고 보고 있다. 지금 현재 KBS·MBC·SBS가 네이버를 포함한 국내 포털 등에게 막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준비중인 이유이기도 하다.
둘째 이유는 네이버의 폐쇄성이다. 네이버의 가장 큰 수익 수단은 키워드 광고이다. 네이버는 인터넷에 있는 많은 웹페이지들을 검색, 그 결과를 정보 소비자에게 제시하면서 광고를 붙여서 돈을 벌고 있다. 하지만 네이버는 인터넷의 개방성의 혜택을 100% 받고 있으면서도, 네이버의 콘텐트 자산은 다른 인터넷 기업에 거의 개방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다른 검색업체가, 네이버의 지식인이나 블로그를 검색 색인화(indexing) 하려고 하면, 네이버는 대부분의 콘텐트의 색인화를 막고 있다. 물론 네이버는 최근 뉴스 서비스를 중심으로 검색 아웃링크를 도입하는 등 약간의 개방화 노력을 시작했다.
검색에서의 우위를 바탕으로, 언론사 등으로부터 콘텐트를 헐 값에 공급 받고 있기 때문이다. 각 사별로 가격은 다르지만, 현재 네이버는 언론사로부터 콘텐트를 사가면서 기자 2~3명의 인건비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만 지급하고 있다. 물론 이는 “공짜로 콘텐트를 공급하겠다”는 업체들이 있을 만큼, 공급 과잉 현상을 보이는 뉴스 시장의 상황과도 연관이 되어 있다.
◆ 네이버 “억울… 조금만 지켜봐 달라”
NHN의 임원들은 요즘 “억울하다”며 역(逆)차별을 많이 이야기 한다. 네이버에 대한 비판 중에는 합리적인 것도 많지만, 상당수는 근거 없는 비방이라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구글이 우수한 엔지니어를 데려가면 국내 인터넷 산업 발전에 좋은 현상이고, 네이버가 우수 인재 스카우트에 열을 올리면 “네이버가 우수 인재를 싹쓸이한다”는 비판이 쏟아진다는 것이다. 또 구글 검색을 통해 무수히 많은 음란물이 서비스 되는 것은 문제가 안되고, 어쩌다 네이버 검색을 통해 음란물이 게재되면 “마치 네이버가 음란물의 온상처럼 오인 받는다”는 주장이다. NHN 홍은택 이사는 “마치 구글은 선이고, 포털 특히 네이버는 악인 것처럼 대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하고 있다.
NHN 최휘영 대표는 “네이버는 미디어가 아니라 정보의 유통상이다, 절대 콘텐트를 직접 생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콘텐트 생산자(저작권자)와 유통업체(네이버)와의 바람직한 관계를 만드는 데 노력할 것”이라고도 말하고 있다.
NHN에 대한 나쁜 여론은 결국 2가지 숙제를 풀 때만이 다소 진정될 전망이다. 즉 NHN이 약속대로 콘텐트 생산자와 유통자의 상생 모델, 또 중소 인터넷 기업과 네이버와의 윈윈(win-win) 모델을 만들 수 있느냐가 첫번째 숙제이다. 또 NHN이 한국시장에서 주로 돈을 버는 ‘우물 안 인터넷’ 기업을 벗어나, 일본·중국·미국 시장에서 얼마나 선전하느냐도 중요한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