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 담장 안 울려 퍼지는 합창…어느 음악교사의 30년 봉사
by박정수 기자
2023.08.16 06:00:00
음악교사 출신 이숙경씨 1985년부터 교도소 봉사활동
수용자 합창단 지휘…“음악 통해 삶에 대한 희망 갖게 하고 싶어”
“교정위원 체계적 선발로 진심 어린 봉사 이어졌으면”
오랜 봉사 가족들 지지 큰 힘…가수 겸 배우 오종혁 든든한 지원군
[이데일리 박정수 기자] “처음엔 교회 집사님 권유로 교도소 수용자들의 합창 피아노 반주를 하게 됐습니다. 다만 검사였던 부친을 통해 교도소 수용자 중에도 억울하게 갇히는 사례를 알고 있기에, 이들을 음악으로 위로하고 용기를 주고 싶어서 교정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수용자들에게 합창을 가르치는 게 힘들고 어려웠다면 지금까지 못 했을 것이고 어느 합창단 가르치는 것보다 수용자 형제들을 가르치며 깊은 감동과 보람이 있었답니다. 그러다 보니 세월이 30년 넘게 흘렀습니다.”
| 가수 겸 배우 오종혁 씨 모친인 이숙경 씨. 이 씨는 성악을 전공한 음악 교사 출신으로 퇴직 후 1985년부터 남부교도소, 의정부교도소, 동부구치소 등 여러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의 합창을 지휘하고 있다.(사진=박정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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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수용자들을 위한 합창 지도를 30년 넘게 맡아온 이숙경 씨는 지난 3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관한 얘기부터 풀어나갔다. 이숙경 씨는 성악을 전공해 능곡중학교와 가평고등학교, 주문진여자중학교 등에서 음악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퇴직 후엔 1985년부터 주 5일 동안 서울 남부교도소·의정부교도소·서울 동부구치소·안양교도소 등을 다니며 노래 지도를 해 왔다
이 씨는 “코로나19 이후 수용자들이 모이는 게 어려워 합창 모임이 많이 중단됐다”며 “현재는 남부교도소에서 수용자들의 합창 지휘를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피아노 반주 봉사자가 없어 피아노를 치면서 지휘하고 있는데 수용자들이 너무 열심히 잘 따라주어서 고맙다”고 말했다.
수용자들이 비록 죗값을 치르기 위해 수감생활을 하고 있지만, 노래와 연주 연습을 하며 새 출발을 다짐하고 있다고 한다.
이 씨는 “합창단원 중에는 형기가 긴 사람도 있고 짧은 사람도 있다”며 “여러 이유로 다양하게 모였지만 합창하는 가운데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 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심성 자체가 나쁜 분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말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한 사람 있다는 것만 확신한다면 다시는 범죄적 성향을 보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그는 “처음 합창단에 들어올 때는 낙심과 원망, 불안이 뒤섞인 어두운 얼굴들이다”며 “하지만 합창을 하다 보면 노래 내용들이 사랑과 감사, 희망, 꿈, 용서 등 좋은 가사다 보니 점점 밝아지고 활기찬 모습으로 변해 가는 걸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합창의 주제가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내용이다 보니 자신들의 입으로 이를 고백하며 참회하면서 자신들도 모르게 변화하는 것 같다”며 “수용자들이 합창하면서 범죄적 심성을 순화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또 수용자 가운데 음악을 잘하는 단원들은 출소 후 사회에 나가서 합창단을 지휘하는 경우도 있고 음악으로 봉사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이 씨는 “감사하게도 30년 넘는 기간 동안 단원들이 출소 후 자신에게 해코지하는 경우는 없었다”며 “오히려 사회에 나와서 봉사에 힘쓰는 단원도 있고 매주 교회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중창단 멤버로 활동하는 단원도 있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봉사활동을 하며 잊지 못할 일들도 많았다고 한다.
일례로 이 씨가 교통사고로 인해 합의가 안 돼 곤란에 빠져 있을 때는 수용자 단원들이 탄원서를 쓰겠다고까지 발 벗고 나기도 했고, 일부는 금식기도까지 하며 이 씨의 건강을 빌기도 했다고 한다.
이 씨는 “주변에서 수용자들을 위한 봉사활동이 힘들지 않으냐고 걱정하기도 하는데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오히려 수용자 단원들에게 받은 사랑과 고마움이 더 크다”고 말했다.
한 가지 바람으로는 법무부에서 신청을 통한 봉사보다는 체계적인 선정을 통해 교정위원을 위촉했으면 한다고 했다.
이 씨는 “법무부에서 수용자 교정·교화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을 자원봉사자인 교정위원으로 위촉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 주고 있다”면서 “바람이 있다면 수용자 교화 활동을 하고자 할 때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수용자들의 심리 상태나 환경 등을 이해하고 한다면 더 효율적이고 진정한 교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오랜 기간 봉사활동을 해올 수 있었던 데는 가족들의 지지가 큰 힘이 됐다고 한다. 특히 가수 겸 배우이면서 이숙경 씨의 아들인 오종혁 씨가 든든한 지원군이 돼줬다고 한다.
이 씨는 “30년 넘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정작 엄마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두 아들이 이해해 주고 있다”며 “한편으로는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종혁이의 경우 경제적 지원 없이도 어릴 때부터 자립했고, 현재는 든든한 경제적 지원으로 봉사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지원군이 돼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