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화가' 라울 뒤피가 전하는 색채의 마술

by이윤정 기자
2023.05.09 05:30:00

특별전 ''라울 뒤피: 색채의 선율''
유화·드로잉 등 160여점 선보여
''전기의 요정'' 석판화 연작·''자화상'' 등
9월 10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빛의 도시’ 파리를 상징하는 에펠탑 왼쪽으로 신들의 전령이자 엘렉트라의 딸인 아이리스가 보인다. 그녀는 빛을 타고 오케스트라와 함께 날아다니며 무지개색을 퍼뜨린다. 마치 전기의 요정이 세상을 밝게 비추는 것처럼 말이다. 고대 제우스의 벼락에 연결된 이브리 쉬르 센 발전소의 발전기, 산업화 초기의 공장과 기차, 전등도 찾아볼 수 있다. 그림의 상단부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을, 하단부에는 토마스 에디슨 등 전기와 관련된 과학자들을 그렸다.

라울 뒤피의 대표작 ‘전기의 요정’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는 작품에서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한 전기의 발견이 가져온 낙관주의를 경쾌한 색채로 보여준다.

‘기쁨의 화가’로 불리는 프랑스 화가 라울 뒤피(1877∼1953)의 70주기를 맞아 국내 첫 회고전이 열린다. 오는 9월 10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30주년 특별전 ‘라울 뒤피: 색채의 선율’이다. 프랑스 니스 시립미술관과 앙드레 말로 현대미술관의 소장품, 개인 소장가 에드몽 헨라드의 소장품을 통해 유화와 수채화, 드로잉 등 160여점을 선보인다.



전시 총괄 큐레이터인 에릭 블랑고슈르 트루아 미술관 관장은 “회화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총체적으로 뒤피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보여주도록 기획했다”며 “뒤피는 생전 ‘내 눈은 못난 것을 지우게 되어 있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러한 그의 세계관에 흠뻑 빠져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라울 뒤피 ‘전기의 요정’(사진=가우디움어소시에이츠).
뒤피는 장 콕토, 기욤 아폴리네르 등과 작업하며 아방가르드 미술을 이끌었다. 1952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회화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거장 반열에 올랐다. 그의 작품들은 밝고 화려한 색감과 경쾌한 붓질이 특징이다. 그는 그림뿐 아니라 일러스트레이션, 실내디자인, 패션 등 장르를 넘나들며 작업했다.

1·2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등의 상황 속에서도 그는 삶의 기쁨을 그려냈다. 박거일 예술의전당 시각예술부장은 “시련의 시대를 살았음에도 기쁨과 희망, 즐거움의 색채와 선율을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코로나 이후 불안한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시기에 적절한 전시”라며 “많은 사람이 뒤피를 회화작가로만 기억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그의 다양한 면모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라울 뒤피 ‘에밀리엔 뒤피의 초상’(사진=가우디움어소시에이츠).
이번 전시는 지인들의 초상, 바다와 여러 곳을 담은 풍경화, 음악과 문학 등 뒤피가 좋아했던 11개의 주제별로 전시공간을 구성했다. 동선을 따라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뒤피의 낙천적인 취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뒤피가 말년에 그린 명작 ‘자화상’을 비롯해 ‘붉은 조각상이 있는 라울 뒤피의 아틀리에’, 작가의 기량이 절정에 달한 1930년대에 제작된 ‘에밀리엔 뒤피의 초상’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전기의 요정’을 석판화 기법으로 제작한 연작을 국내선 최초로 선보인다. 가로 60m, 높이 10m에 달하는 작품으로 현재는 파리 시립 근대미술관에 설치돼 있다. 전기의 역사와 전기가 인류에게 끼친 영향을 표현한 ‘전기의 요정’은 벽화와 석판화로 총 두 번 제작됐다. 석판화 연작은 1951년부터 1953년까지 제작했는데 당시 385점만 인쇄됐다. 판화 연작 시리즈는 뒤피 말년의 철학과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뒤피는 ‘코르셋 없는 드레스’ 등 당대 혁신적 패션을 이끌었던 폴 푸아레와 협업해 18년간 1000여 가지 직물 디자인을 생산했다. 뒤피의 패턴으로 만든 드레스 17벌을 통해 그의 예술세계를 폭넓게 들여다볼 수 있다.
라울 뒤피 ‘붉은 조각상이 있는 작가의 아틀리에’(사진=가우디움어소시에이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