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보존범위 용도별로 차등…서울시 면적 4.3배 개발제한 풀려
by이윤정 기자
2022.11.10 05:30:00
일률적 500m→문화재별 범위 조정·축소
규제 결과 확인 ''디지털규제시스템'' 구축
원스톱 체계 ''문화재영향진단'' 시행
"규제 개선안, 장릉 아파트 재판에 영향 없어"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정부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의 규제 범위를 용도별로 조정하거나 축소한다. 이에 따라 문화재 반경 500m 이내였던 규제 범위가 200m 이내로 대폭 완화된다.
문화재청은 9일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2차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내 규제 사항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내용 등을 담은 ‘문화재 규제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개선방안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규제 합리적 조정 △디지털규제시스템 구축 및 문화재 영향진단제도 도입 △국민·기업의 매장문화재 규제이행 절차 간소화 △매장문화재 유존지역 조사 및 보존조치 부담 완화 △민속마을 등 문화재지역 주민 생활 여건 개선 등 5가지 주요 과제를 담았다.
문화재청은 이번 조치가 국민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문화재 보호의 균형점을 찾는데 목적이 있다고 강조했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보존 정책에 대한 기본 원칙은 준수하되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하게 풀 것”이라며 “‘김포 장릉 사태’가 앞으로는 절대 발생하지 않도록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다.
| 최응천 문화재청장이 지난 4일 ‘문화제 규제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있다(사진=문화재청). |
|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은 지정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정하는 구역으로, 문화재의 외곽 경계로부터 500m 이내에서 시·도지사가 문화재청장과 협의해 이를 조례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문화재는 용도 구분 없이 일률적으로 500m로 범위가 지정돼 있고 해당 구역 내 건축 행위 등 대부분이 개별적으로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게 돼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문화재청은 주거·상업·공업지역 200m, 녹지지역은 500m를 기준으로 삼아 각종 개발행위 규제를 완화하고, 문화재별로 설정 범위를 확인해 이를 조정하거나 축소키로 했다. 녹지를 제외한 주거·상업·공업지역의 경우 문화재로부터 200m 반경까지만 문화재청이 개별 심의하고 나머지는 지자체가 판단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2025년까지 총 1665건, 서울시 면적의 4.3배 크기에 해당하는 2577㎢에 대한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범위를 재검토할 예정이다.
하지만 문화재청의 일부 권한이 지자체로 위임되면서 ‘왕릉뷰 아파트’와 같은 문제가 발생할 소지도 커졌다. 이에 대해 이종훈 문화재청 보존정책과장은 “지자체에 관련 전공자 배치를 늘리면서 문제를 해소해 나갈 것”이라며 “지자체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도 늘리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2026년까지 3차원(3D) 모형으로 규제 결과를 미리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규제시스템도 구축할 계획이다. 또한 매장문화재 보존조치와 현상변경 허가의 경우 ‘문화재영향진단’으로 일원화한다. 이같은 ‘원스톱’ 체계를 통해 민원 처리 기간이 30일 정도 단축될 전망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하회마을·양동마을을 비롯한 8개 민속마을에 대해서는 취락 형태, 건축 유형 등 특성을 반영한 정비 기준을 마련하고 노후 생활 기반 시설을 바꿔나갈 계획이다. 한옥에 국한됐던 고도 지원 대상도 근현대 건축물까지 지원을 확대했다.
‘왕릉뷰 아파트’ 논란은 문화재청이 김포 장릉 인근에서 3개 건설사가 시공 중이던 아파트가 문화재청장 허가 없이 지어지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촉발됐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김포 장릉은 조선 시대 인조의 아버지 추존왕 원종과 부인 인헌왕후의 무덤이다.
문화재청은 문화재 반경 500m 내의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 짓는 20m 이상의 건축물은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사전 심의를 받아야 하지만, 건설사들이 이같은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며 지난해 7월 해당 아파트 19개 동에 공사중지 명령과 철거 등 개선안을 요구했다. 이에 불복한 건설사들이 공사중지 명령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건설사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문화재청이 재항고장을 내며 양측은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남겨두고 있다.
다만 이번 규제 완화 조치가 재판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전망이다. 장릉 아파트의 경우 단순히 범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보존지역 경계선에 녹지가 끼어있는 등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어서다. 최 청장은 “소송은 취하없이 계속 간다”며 “이번 조치가 재판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