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음식점 허가총량제는 제2의 소득주도성장론이다
by최훈길 기자
2021.11.15 06:15:00
|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장. (사진=방인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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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장] 여당 대선후보의 입에서 음식점 허가총량제라는 발언이 나왔다.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나온 발언인지는 알수 없으나 발언자의 무게감으로 볼 때 절대 가벼이 넘길 사안이 아니다. 음식점을 비롯한 자영업의 현실에 얼마나 적합한 대안인지 치밀하게 따져 볼 필요가 있겠다.
음식점 허가총량제의 기본 발상은 음식점이 우후죽순 난립해 과잉경쟁을 하는 바람에 음식점 업계가 공도동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옳은 진단이다. 현실에서 자영업계의 과잉경쟁이 업계 전체의 수익성을 떨어뜨리고 경쟁에서 낙오자를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처방이 새로 음식점을 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하고 음식점의 숫자도 총량으로 규제하겠다는 것이다. 잘못된 처방이다.
처방이 제대로 되려면 먼저 병의 원인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자영업계에 왜 과잉경쟁이라는 병이 생겼을까? 왜 우리나라에서 유독 자영업자가 많은 걸까? 정말 불나방처럼 일확천금을 쫓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유독 많아서 그런 것일까?
우리나라에서 자영업자가 많은 이유는 당연히 비자영업자, 즉 임금근로자가 적기 때문이다. 그러면 임금근로자는 왜 적은가? 기업들이 임금근로자를 적게 뽑기 때문이다. 전문용어로 얘기하면 우리나라 기업들이 노동절약적 생산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기업들이 노동절약적 생산방식을 선호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들어서부터다. 노동권 신장을 핵심으로 하는 ‘87년 체제’가 자리 잡으면서 생산요소로서 노동의 상대적 비용이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한 시기다. 이전까지 착취적 노동이 심각했던 상황을 감안하면 노동권 신장은 바람직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임금근로자 그중에서도 특히 정규직 임금근로자 중심으로 차별적으로 노동권 신장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런 연유로 노동시장은 고용안정성과 임금 수준이 모두 높은 정규직 임금근로자, 고용안정성도 떨어지고 임금 수준도 정규직에 비해 크게 낮은 비정규직 임금근로자, 그리고 자영업자의 3분할 구도가 형성됐다.
기업들은 정년까지 해고도 할 수 없고 임금 수준도 높은 정규직 임금근로자를 늘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규직을 최소한으로 쓰는 노동절약적 생산방식을 선호하게 되었다. 특히 노동권이 강한 대기업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종사자 250인 이상 큰 기업에서 근무하는 종사자 비중이 OECD 국가에서 최하위 수준이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비정규직 임금근로자와 자영업자가 많다. 비정규직 임금근로자는 임금 수준도 낮고 고용안정성도 떨어져 언제든지 자영업자로 이동할 유인을 갖는 잠재적 자영업군이다. 그래서 결국 자영업은 항상 과잉경쟁이다. 빛을 쫓아 몰려든 불나방보다는 정규직 장벽에 막혀서 어쩔 수 없이 밀려온 난민이 훨씬 많다.
이런 노동시장 구조 아래서 음식점 허가총량제를 하면 어떻게 될까?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음식점 면허증에 권리금이 붙을 것이고 암거래가 횡행할 것이다. 그래서 결국 기존 자영업자와 잠재적 자영업자 간에 또 하나의 불평등 장벽이 세워질 것이다. 한쪽은 정규직 담장, 다른 한쪽은 자영업 담장 사이에 끼여서 오징어 신세가 되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자영업 과잉경쟁을 없애는 진짜 해법은 새로운 장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장벽을 허무는 것이다. 정규직의 높은 장벽을 낮추고 비정규직과의 임금 격차를 줄여야 한다. 그리고는 기업들이 노동친화적 경영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현재의 노동시장 구조를 그대로 두고 기업들 팔을 비틀어 정규직을 많이 채용하라고 한들 기업들은 시늉만 낼 뿐 결코 진심으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음식점 허가총량제는 소득주도성장론과 발상이 똑 닮았다. 둘 다 모두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아 해결하려 하기 보다 정책수단 하나로 손쉽게 문제를 풀 수 있다는 발상이라는 점에서 맥을 같이 한다. 병의 근원은 깊고 심각한데 어찌 최저임금이나 허가권 하나로 병이 치유될 수 있겠는가? 음식점 허가총량제 논란은 자영업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것으로 그 역할을 충분히 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