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소통, 경청, 협치 사라진 언론중재법

by이성기 기자
2021.08.30 06:00:00

확증 편향, `답정너`식 입법 독주 벗어나야

[이데일리 이성기 기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전적 의미를 찾으면 `비록 사실은 그러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라고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강행 처리 입장을 굽히지 않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곱씹을수록 머리 속에서 이 말이 떠나지를 않는다.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왼쪽부터),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 성재호 방송기자연합회 회장, 전대식 전국언론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이 지난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언론중재법 강행 처리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민주당 지도부는 정치권 안팎의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언론중재법 처리를 밀어붙이는 이유로 잘못된 언론 보도로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했지만 손해 배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현실을 꼽는다. 때론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기업을 망하게 하는 등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부르지만, 해악 정도에 비례하는 처벌을 받지 않은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중재법을 굳이 `가짜뉴스 피해 구제법`으로 부르는 이유다.

민주당 지도부의 주장처럼 일부 왜곡과 과장, 성급하고 단정적인 보도 등 `흑역사`가 존재했던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다만, 강행 처리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최선의 피해 구제책인지는 의문이다. `언론재갈법`, 문재인 대통령의 `퇴임 후 안전보장법`이란 야권의 선동적인 정치 공세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득보다 실이 더 클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실제 언론중재위원회가 2019년 법원이 선고한 언론 관련 민사소송 236건을 분석한 결과, 일반인이 제기한 소송은 31.4%에 그쳤고 공직자나 기업, 단체가 제기한 소송 비율이 과반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언론중재법이 일반인의 피해 구제보다 권력층이나 힘 있는 기관들이 공론화를 막기 위한 전략적 봉쇄 소송의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클 수 있다는 얘기다.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이 되는 허위·조작 보도의 `고의 또는 중과실` 조항 역시 고무줄 잣대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내 언론현업단체들뿐만 아니라 세계신문협회, 국경없는기자회(RSF) 등 대표적인 국제 언론단체들까지 우려를 표명한 까닭이다.

더군다나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유포하는 유튜브와 1인 미디어 등은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신문·방송 같은 `레거시 미디어`(전통 매체)와 같은 `언론`이 아니란 게 이유인데, 기능과 사회적 파급력을 감안할 때 쉬이 납득하기 어렵다. 언론개혁 취지와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기성 언론의 일방적 피해자라는 피해 의식이 본질을 흐리고 방향을 왜곡시키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민주당은 30일 본회의에서 개정안 처리를 예고한 상태다. 이에 맞서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와 권한쟁의심판·위헌심판청구 등으로 입법 저지에 나설 방침이다. 끝내 강행 처리를 고집한다면 개원 1년 3개월 만에 이뤄진 국회 정상화는 다시 강대강 대치로 정국은 소용돌이로 빠질 수밖에 없다.

4·7 재보선 패배 이후 민주당은 소통과 경청, 여야 협치를 강조해왔다. 언론중재법 강행 처리는 이에 역행하는 길이자 이율배반적 태도다. 나만이 옳다는 확증 편향,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식 독주는 부메랑으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개혁은 머리를 맞대고 함께 가야 성공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