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명철 기자
2019.03.18 05:40:00
연예기획사, 아티스트 계약금 만큼 무형자산으로 인식
매년 일정금액 상각…해지하면 한번에 손상차손 처리
재무상 가치 없어져…비중 감안 시 타격 크진 않을듯
[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연예계를 뒤흔든 사상 초유의 ‘버닝썬 사태’가 일파만파 확산하고 있다. 최정상급 아이돌그룹인 빅뱅의 멤버 승리가 연예계 은퇴를 선언하는 등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이번 사태와 직간접 연관이 있는 것들은 물론 연예계 전반 신뢰도 하락으로 엔터테인먼트 관련주는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형국이다.
이처럼 주가가 떨어지는 것은 소속 연예인의 일탈에 따른 이미지 손상도 있지만, 승리처럼 은퇴를 선언할 경우 재무제표상에도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엔터테인먼트 회사는 연예인을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어 회계상 손실이 불가피하다.
17일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YG엔터(122870) 주가는 승리의 경찰조사가 본격화한 지난주 17%나 떨어졌다. 성접대 의혹 수사 착수 전날인 지난달 25일로 범위를 넓히면 24.8% 급락세다. 같은 기간 시가총액도 8638억원에서 6492억원으로 13거래일 만에 2146억원 넘게 증발했다. 코스닥 시가총액 순위도 연초 39위에서 65위로 수직 낙하했다
엔터주에서 가수나 배우 등 소속 아티스트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YG엔터가 승리 사태로 곤혹을 치르기도 하고 방탄소년단(BTS)을 키운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상장 전부터 높은 관심을 끄는 것이 대표 사례다.
하지만 실제 재무제표에 이들의 활약상이 모두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연예기획사들은 사실상 대부분의 영업활동을 담당하는 소속 아티스트들의 가치를 무형자산으로 인식하고 있다.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은 무형자산을 ‘물리적 실체는 없지만 식별 가능한 비화폐성 자산’으로 규정했다. 판매 제품이나 소유 부동산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신약을 만드는 제약·바이오기업의 경우 일부 연구개발(R&D) 활동을 무형자산으로 회계 처리한다. 연예기획사는 아티스트에게 지불하는 계약금이 무형자산이 된다. 예를 들어 A라는 회사가 가수 B씨와 50억원을 주고 5년간 계약을 체결했다면 회사는 당해 사업연도에 무형자산 중 전속계약금 항목으로 50억원을 책정한다.
무형자산이 계속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매년 같은 비율로 자산을 줄이는 정액법을 적용했다면 해마다 10억원씩을 상각하게 된다. B가 열심히 활동해 해마다 1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회사에 안겨줘야 이득을 보는 셈이다.
연예기획사들은 사업보고서 등을 통해 무형자산 중 전속계약금 항목을 공시하고 있지만 개별 아티스트별 계약기간이나 계약금은 따로 밝히지는 않는다. 연도별 전속계약금 변동을 통해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이번 사태의 중심에 선 YG엔터 역시 전속계약금의 총액만 알리고 있다. 회사와 빅뱅은 7년 계약기간이 만료된 2015년 재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실제 2015 사업연도의 YG엔터 별도 기준 무형자산 중 전속계약금 취득원가는 약 154억원으로 전년대비 88억원 가량 늘었다. 그해 무형자산을 취득한(계약금을 지급한) 금액이 88억원 정도 되는 것이다. 다만 같은해 회사가 싸이와도 재계약한 것 등을 감안하면 빅뱅의 계약금은 이보다 다소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
승리의 경우처럼 소속사와 계약 도중 해지를 하게 되면 장부상으로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YG엔터는 계약금을 계약기간으로 나눠 해마다 같은 금액을 상각하는 정액법을 적용하고 있다. 한 회계사는 “기간이 남았는데도 계약을 해지했다면 이후 경제적 효익이 없기 때문에 무형자산의 가치가 없어진다”며 “해당 사업연도에 남은 계약금을 모두 손상차손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무제표에서 무형자산으로 인식한 승리의 가치(남은 계약금)가 한 번에 소각되는 셈이다. 빅뱅 전체 계약금과 승리의 팀 내 비중 등을 감안할 때 올해 순이익에 미칠 수준은 수억원대에 그칠 것으로 추산된다.
FNC엔터는 주력 밴드그룹에서 잡음이 발생했다. 최종훈은 FT아일랜드를 탈퇴하겠다고 알렸다. 군목부 중인 씨엔블루 이종현도 소속사를 통해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두명 모두 소속사와 계약 해지 소식은 전하지 않고 있어 당장 남은 무형자산의 계약금을 손상처리할지는 불확실하다. 나머지 계약기간 동안 이들의 활동으로 얻었을 매출을 포기하는 것은 부차적인 요소다. 다만 멤버 개별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밴드그룹 특성상 유의미한 타격을 입을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성관계 동영상 유포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정준영은 소속사 메이크어스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해지했지만 상장사가 아니다. 국제회계기준을 적용하지 않아 계약금을 무형자산으로 인식했을지도 미지수다. 실제 2017 사업연도 이 회사의 감사보고서를 보면 무형자산 항목은 소프트웨어, 저작권, 기타 등이다. 용준형은 하이라이트를 탈퇴했지만 소속사와 계약 해지 소식은 없다.
향후 수사 과정에서 연예인들의 본인 잘못이 컸던 것으로 결론 난다면 회사는 구제 방안을 마련할 수도 있다. 한 엔터테인먼트 상장사 IR 담당자는 “세부 계약 조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티스트의 귀책사유가 있다면 나중에 위약금 청구 등으로 손실을 보전할 수는 있을 것”이라며 “사태가 심각해 소송을 진행한다면 손상차손 인식이 보류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