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용계고택' 빈터를 바라보며

by최은영 기자
2019.01.23 05:00:00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어허, 이내 신세 괴이하고/ 이 세상이 어찌된 세상인가…/ 아끼던 지팡이 손에 잡고/ 성근 짚신 둘러맨 후에/ 사방을 둘러보니/ 갈 곳이 전혀 없다…/ 넓고도 아득한 이 천지간에/어느 곳으로 가잔 말인가.

한말 예안 의병장 운포 이중린 선생(李中麟, 1838~1917)이 나라 잃은 망국의 한을 노래한 ‘입산가(入山歌)’의 일부이다. 예안은 퇴계 선생의 고향으로, 지금은 안동에 속해있다. 운포는 퇴계 선생의 12대 후손인 시골 선비다.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의병을 일으켜 일제에 맞서다 끝내 나라를 잃었다. 이에 일제가 이른바 은사금으로 회유하려 하자 뿌리치고 집을 떠나며 읊은 우국충정의 시다. 올해가 3·1운동 100주년이기에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독립유공자가 유독 많은 이곳 안동에는 3·1운동과 관련해서도 가슴 뭉클한 이야기가 많이 전해진다. 예안장터에서 앞장서 독립만세를 부르짖다 체포된 김락 여사(金洛, 1863~1929)의 경우는 특히 애처롭다. 그는 감옥에서도 조국 독립을 외치며 저항하다 시뻘건 인두 고문을 받고 끝내 실명까지 당한 여장부다. 이 김락 여사 시아버지가 초대 예안 의병장 향산 이만도 선생(李晩燾, 1842~1910)이다. 향산은 명성황후 시해 때 예안 의병장으로 추대된 큰 선비로서 경술국치를 당하자 24일간 단식하여 순국한 분이다. 그 시아버지에 그 며느리인 것이다. 이 집안은 아들 손자까지 3대가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아름다운 가문이란 이런 것이다.



향산에 이어 2대, 3대, 4대 예안 의병장도 모두 퇴계 가문 출신의 선비들이다. 2대 이중린, 3대 이인화(李仁和, 1859~1929), 4대 이찬화(李燦和, 1843~1925)가 그들이다. 이 가운데 ‘입산가’의 주인공 운포는 인근 고을 의병들과 연합의진을 결성하여 상주 태봉의 일본군 병참기지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현격한 화력 차이로 패퇴하여 쫓기게 되었는데, 이를 추격하던 일본군은 안동의 민가 천여 호를 방화하고 급기야는 의병장이 퇴계 후손이라 하여 그의 신주가 모셔진 퇴계 종택까지 불 질렀다. 1896년 4월의 일이다. 이에 행사와 손님이 많은 퇴계 종택은 할 수 없이 운포의 용계고택(龍溪古宅)을 임시 거처로 삼았다. 쫓기는 와중에도 자신의 의병활동으로 종가가 불타자 죄송스런 마음에 운포가 집을 내놓은 것이다.

퇴계 종택에 대한 일제의 만행은 이후에도 계속되어 10년 후 군대 해산에 저항하여 다시 의병이 일어나자 1907년 10월 남아있던 종택 일부와 정자 추월한수정(秋月寒水亭)마저 불태웠다. 일본에서도 오랫동안 존경받아 온 퇴계 선생의 종택에 저지른 만행을 개탄하는 내용이 대한매일신보에 보인다. 그 뒤 퇴계 종택은 30년이 지나서야 옛터 가까이에 복원될 수 있었다. 복원 당시 추월한수정은 선비들의 공적인 공간이라는 상징성을 살려 500여 퇴계 선생 제자 집안에서 비용을 분담하였고, 안채와 사랑채의 살림집은 후손이 힘을 모아 지었으며, 자재의 일부는 용계고택을 헐어서 충당하였다. 지금의 퇴계 종택은 근 100여 년 전에 이렇게 지어졌다. 조상과 스승을 기리는 정신의 결정체이다. 아름답지 않은가.

안동댐 건설로 수몰된 초대 의병장 향산의 고택은 40여 년 전에 안동시내로 옮겨졌는데, 찾는 이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어 다행이다. 3대 이인화 의병장을 배출한 퇴계 형 온계 이해(李瀣) 선생의 종가인 삼백당 종택도 100년이 넘게 이곳저곳을 떠돌다 정부의 지원으로 2011년 옛터에 새집으로 복원되었다. 4대 이찬화 의병장의 집이며 퇴계 선생 생가인 노송정종택은 당시 다행히 화마를 피했다. 하지만 2대 이중린 의병장의 용계고택은 정자인 침천정(枕泉亭)만 몇 해 전 후손들이 복원하였으나 사랑채와 안채 터는 아직까지 허허벌판이어서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자신의 의병활동 때문에 종택이 불탔다는 책임의식과 선조의 사당을 다시 세우려는 숭고한 마음이 발휘된, 불과 100년 전 역사의 현장이다. 공동체보다 개인의 이해와 안위를 앞세우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커다란 울림을 주는 용계고택의 빈터를 그냥 바라만 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