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정유 인력 유출…경쟁력 약화 '부메랑'

by이재호 기자
2016.01.05 06:00:00

[이데일리 이재호 기자] 해외에서는 국내 주력 산업의 핵심 인재들을 호시탐탐 노려 왔다. 미국과 유럽에서 데려오는 것보다 인건비가 저렴한 데 비해 기술력과 노하우는 그에 못지 않기 때문이다.

조선업 인력 빼가기에 주력했던 중국과 정유 및 석유화학 엔지니어들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제공하는 중동이 대표적이다.

이같은 인력 유출은 국내 조선·정유·석유화학 산업의 경쟁력 약화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 오고 있다.

국내 조선사 엔지니어들의 중국행은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다. 중국 정부가 ‘중국의 수출입 물량은 중국에서 건조한 배로 나른다’는 국수국조(國輸國造) 정책을 추진하면서 조선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특정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외부에서 인재를 유치해 기술을 넘겨받는 것이다. 중국도 이 방식을 채택했다. 실제로 지난 2007년 중국 칭다오시는 QJMS라는 조선소를 설립하면서 국내 한 조선사의 엔진 설계 전문가인 부사장급 인사를 스카우트해 업계의 이목이 집중된 바 있다.

설계와 용접 등의 실무 책임자를 임원급으로 데려가는 사례도 허다했다. 이 과정에서 핵심 기술이 유출되는 경우도 발생했다. 2007년에는 선박 설계도면을 포함해 1400억원의 가치를 지닌 제조기술을 중국으로 빼내려던 국내 조선사 직원이 구속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2008년에도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설계 기술 등이 중국으로 넘어갈 뻔했다.

중국 정부는 조선업 육성에 나서면서 2015년까지 한국을 뛰어넘겠다는 목표를 수립한 바 있다. 수주 규모로는 이미 한국을 뛰어넘었다. 올해 수주량 점유율은 한국이 33.8%로 중국(30.1%)을 앞섰지만 가격 경쟁력을 갖춘 중국 업체들과 출혈 경쟁을 벌이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이 때문에 해양플랜트와 초대형 컨테이너선, LNG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의 주도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이 분야에서도 중국이 추격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난 9월 난퉁코스코KHI조선과 중국선박공업그룹(CSSC) 등 4개 조선소는 코스코컨테이너라인(COSCON)이 발주한 1만9000TEU급 컨테이너선 11척을 건조하기로 했다.



11월에는 상하이와이가오차오조선(SWS)이 차이나쉬핑그룹으로부터 2만1000TEU급 컨테이너선 11척을 수주했다. LNG선의 경우 지난 1월 중국선박중공업(CSIC)이 시노펙으로부터 2척을 수주하는데 성공했다.

모두 자국 내에서 발주가 이뤄진 계약이지만 기술력이 수반돼야 건조할 수 있는 선박들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첨단 기술이 적용되는 선박의 경우 여전히 한국이 중국보다 한수 위지만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며 “인력과 기술 유출에 따른 영향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정유와 석유화학 산업의 경우 중국과 더불어 중동이 국내 엔지니어들을 대거 흡수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연봉 수준이 국내와 큰 차이가 없어 핵심 인재들을 끌어들이기 어렵지만 중동은 오일머니를 앞세워 적극적인 구애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 최대 국영 석유기업인 아람코가 국내 엔지니어 수십명을 영입한 데 이어 최근에는 쿠웨이트 국영 정유사인 KNPC가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미 지난달 말 서류 접수를 마감했으며 현재 면접을 진행 중인데 조건이 파격적이다. 8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엔지니어의 경우 연봉 1억6000만원, 자녀 최대 4명의 학비 90% 지원, 자동차 무상지급, 가구구입비 800만원, 유급휴가 연 42일 등이다.

모집분야도 운전·정비 12개, 프로젝트 엔지니어링 4개 등 총 16개 분야다. 필요한 인재들을 저인망식으로 훑고 있는 것이다.

중동 국가들이 국내 엔지니어들을 빼가는 것은 기존 석유 개발 및 시추 외에 자국의 정유·석유화학 산업을 키우기 위해서다. 이는 결과적으로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중동 지역의 설비 증설이 예상되는 만큼 국내 고급 인력 유출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며 “산업 경쟁력 저하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