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빨리빨리’가 숭례문을 두번 죽였다

by논설 위원
2013.12.05 07:00:00

박근혜 대통령이 균열이 발견된 경북 경주의 불국사 석굴암(국보 24호)을 지난 2일 전격 방문했다. 박 대통령은 불국사측의 안내로 석굴암 내부를 둘러본 뒤 “걱정이 돼서 왔는데 설명을 들으니 보존에 어려움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최근 국보 1호 숭례문 부실 복구로 문화재 관리 문제가 도마에 오르자 직접 석굴암을 찾아 보존 실태를 점검한 것으로 보인다.

주지하다시피 숭례문은 5년간 복구 사업을 거쳐 올해 5월초 국민 품으로 돌아왔지만 완공된 지 5개월도 안돼 기와는 깨지고 단청은 떨어지고 기둥과 추녀 등의 목재도 뒤틀리고 갈라졌다. 단청공사에도 천연 안료대신 일본서 수입한 값싼 안료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마디로 부실 자재 사용에 명맥이 끊긴 전통 공법의 무리한 적용 등 엉망진창의 복원사업이었다.



올해 문화관련 사건 가운데 최악의 뉴스로 기록될 숭례문 부실 복구사건은 문화재에 대한 우리의 천박한 인식을 그대로 보여줬다.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룬 우리지만 문화에 관한한 아직도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숭례문 복원 공사 현장 관리인의 말은 충격적이다. “시공사가 기한을 하루 초과할 때마다 공사 전체 금액의 1000분의 1인 1600만 원이 넘는 돈을 물어내야 했다”고 하니 국보1호의 문화재를 동네 건물 짓듯 했다는 소리 아닌가. 공사기간을 정해놓고 불도저식으로 밀어 붙이면서 무조건 ‘빨리 빨리’만 외쳤다는 얘기다. 문화재청이 주장하는 전통방식 복원은 애당초 물건너 간 일이었다. 한때 부정적으로만 인식된 ‘빨리빨리’ 문화는 우리의 눈부신 경제발전에 일조한 측면이 분명 있다. 하지만 문화재 복원사업에서 만큼은 적용해선 안된다는 것을 이번 숭례문 부실사건이 증명하고 있다. ‘빨리 빨리’ 할 일이 있고 ‘돌 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널 일’이 있다는 것을 문화재청 관계자는 깊이 인식해야 한다.

숭례문 부실공사 논란이 주는 교훈은 문화재 복원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현대식 빌딩 세우듯 마감시간을 정해 놓고 밀어 붙이는 것은 곤란하다. 수십 년을 넘어 백년이 걸리더라도 시간을 갖고 목재 안료등 질 좋은 재료를 확보한 후에 전통방식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첨단응용방식으로 할 것인지를 심사숙고해 작업을 해야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역사가 숨쉬고 후손에게 물려줄 문화재를 보여주기식, 임기응변식으로 해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