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의 달인’ 천신일…‘같은 말 반복·잦은 전화’ 국정원조차 부담

by경향닷컴 기자
2011.06.18 09:36:57

“끝자리가 모자라던데…” 돈 요구도 고수

[경향닷컴 제공] “한 번만 하셔도 될 말씀을 자꾸 반복하고, 같은 문제로 너무 전화를 주셔서 부탁이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국가정보원 경남지부장을 지낸 박모씨는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사진)의 집요한 청탁 행태를 두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천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기록 등에 나오는 진술이다.

2006~2007년 (주)임천공업과 (주)삼성중공업 사이에 경남 거제시 일대 공유수면 매립사업 문제로 분쟁이 발생했다. 삼성중공업은 2008년 4월 임천공업보다 먼저 거제시로부터 농공단지실시계획 승인을 받아 착공에 들어갔다. 임천공업은 국민권익위원회에 승인을 취소해달라는 민원을 제기하는 한편 승인을 내준 거제시를 상대로 감사를 청구했다.

이수우 임천공업 대표는 2008년 7월 천 회장에게 ‘국민권익위와 감사원에 각각 민원과 감사를 청구했으니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임천공업과 삼성중공업의 분쟁 경위 등이 담긴 문건을 작성해 전달했다.

천 회장은 당시 국정원 경남지부장이던 박씨에게 전화를 걸어 “친동생처럼 생각하는 이수우 대표가 공유수면 매립사업을 하는데, 거제시가 삼성 편만 들어 억울하다고 하니 만나서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고 도와줄 일이 있으면 내 일처럼 도와달라”고 말했다. 이후에도 수시로 전화를 걸어 문제 해결을 독촉했다.

박씨는 이 대표를 직접 만나 분쟁과 관련된 얘기를 듣고 거제시청 담당 국정원 직원을 통해 상황을 알아봤다. 그리고 감사원 담당 국정원 직원에게 전화해 “억울한 일이 있어 감사원에 소청을 한다고 하니 통화해보고 잘 도와달라”고 했다. 통화 후 이 대표와 감사원 담당 직원은 감사 상황 등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았다.



천 회장은 또 이 대표로부터 계열사인 (주)건화의 시설 운영자금이 부족하니 은행 대출을 도와달라는 청탁을 받고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천 회장은 2010년 3월 이팔성 회장에게 전화해 “후배가 하는 지방 소재 회사가 대출을 신청했는데 긍정적으로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2009년 12월~2010년 3월 김승유 회장에게는 30여차례나 전화를 걸었다. 김 회장은 천 회장과 함께 고려대 61학번 동기로 ‘MB 인맥’으로 분류된다.

천 회장은 산업은행 부총재 출신 정모씨를 통해 이 대표가 운영하던 (주)동운공업에 대한 워크아웃 개시 결정이 내려지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2004년 12월 이 대표가 천 회장을 찾아가 “산업은행에서 지급보증기간을 늘려주지 않으면 동운공업이 부도난다”고 하자 천 회장은 곧바로 이 대표를 데리고 정씨의 사무실을 찾았다.

그러고는 “내가 꼭 도와줘야 할 동생인데 산업은행에 문제가 있어서 왔다”고 말했다. 이후 산업은행 직원들의 도움으로 동운공업에 대한 워크아웃 결정이 내려졌다.

‘청탁의 달인’ 천 회장은 청탁을 대가로 돈을 받아내는 데도 ‘달인’이었다. 자신의 운전기사를 시켜 이수우 대표의 운전기사로부터 돈이 담긴 쇼핑백과 가방을 받아왔다. 돈을 더 요구할 때는 “지난번 돈이 끝자리가 좀 모자라던데…”라는 식으로 돌려서 이야기했다고 증인들은 법정에서 진술했다.

1심 재판부는 지난 16일 천 회장에게 징역 2년6월 및 추징금 32억1060만원을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