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조선일보 기자
2007.01.08 12:31:00
[리뷰] 평범한 배역에서도 비범함 드러나는…역시 조승우!
[조선일보 제공] 거친 오프닝이었다. 2시간 만에 조승우 출연분 7700여 석이 매진되며 화제를 모았던 뮤지컬 ‘렌트’(Rent·연출 김재성), 그러나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불안한 시작을 경험해야 했다. 모린 역을 맡은 조서연(조승우의 친누나)이 급성 후두염과 감기 바이러스로 쓰러져 7일 개막 무대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객석은 격려의 박수를 보냈지만, 대역 배우는 준비가 덜 돼 있었고 두 장면은 아예 들어내야 했다.
크리스마스로 출발해 이듬해 크리스마스까지. 미국 천재 작곡가로 통하는 조너선 라슨의 대표작 ‘렌트’는 이 1년 동안 싸우고 이별하고 죽고 절망하면서도 사랑하는 뉴욕 변두리 공장지대의 젊은 예술가들(대부분 에이즈 환자거나 동성애자)을 다룬다. 주인공은 작곡가 로저(조승우)와 클럽댄서 미미(고명석). 미미가 양초불을 빌리러 로저의 방문을 두드리면서 둘의 시간이 뒤섞인다.
‘지킬 앤 하이드’와 ‘헤드윅’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렌트’의 조승우는 좀 심심한 감이 있다. 지킬·하이드의 강렬한 대비도 없고, 트랜스젠더 혼자 줄창 노래하는 콘서트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범하고 고요한 배역에서도 조승우는 존재감이 컸다. 노래와 대사의 이음매가 부드러웠고 매듭을 묶어야 할 대목에선 에너지를 폭발시켰다. 다른 9명의 배우에 맞서 노래할 때도 파워가 달리지 않았다.
‘렌트’에서‘이 다음에(Another day)’를 부르는 조승우(로저)와 고명석(미미)
객석엔 오래지 않아 ‘조승우 바이러스’가 퍼졌다. 불완전한 개막 공연의 충격이 잊혀질 정도로 배우는 힘이 셌다. 1막에서 미미의 노래 ‘Out tonight’에 이어 부른 ‘Another day’에서 그는 “말을 할까, 말을 할까…”로 삼키다가도, “너조차 내 마음에 불을 붙일 수는 없다”며 미미를 마음 밖으로 밀쳐냈다. “다음 번에, 다른 날에―”로, 이 노래는 끝난다. 2막에서 마크(나성호)와의 이중창 ‘What you own’, 반쯤 죽은 미미 앞에서의 고백 ‘Your eyes’와 함께 이날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은 장면이다.
이 뮤지컬은 세상 모든 게, 인생마저도 ‘빌린 것(렌트)’이라고 말한다. 얼마나 소중했는지, 시간을 재는 척도는 사랑이라고 노래한다. 양초불빛으로 열리고 눈빛으로 닫히는 치밀한 드라마와 사랑의 맥박 같은 멜로디, 곳곳에 매설한 유머 감각이 객석을 흔들었다. 목을 덮을 정도로 뒷머리를 기르고 청바지를 입은 조승우가 탁자 위에 올라가 추는 춤은 이 작품의 덤이다. 고명석과 나성호를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공연은 3월 4일까지 신시뮤지컬극장. 로저 역은 조승우와 신동엽이 나눠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