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원샷법, 신산업·산업위기지역 확대 추진…공정위 규제 무력화 우려

by김상윤 기자
2018.12.24 06:00:00

정부, 내년 기업활력 제고 정책에 방점
원샷법 지원범위 확대해 사업재편 유도
공정위 "공정거래법 무력화" 우려 전달
"지원 확대사례 실증해 범위 명확화해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19년 경제정책방향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세종=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산업통상자원부가 유명무실한 ‘원샷법(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 개편에 나선다. 현재 적용 대상인 ‘공급과잉’ 업종에서 산업위기지역의 기업과 4차산업혁명 관련 신산업까지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하지만 원샷법 지원범위를 확대할 경우 대기업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한 규제와 정면 충돌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자칫 문재인 정부의 상징과 같은 ‘공정경제 구축’ 바퀴 자체가 빠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대기업에 대한 특례 논란이 다시 불거질 전망이다.

23일 복수의 정부 관계자 말을 종합하면 산업부는 원샷법 지원대상을 4차산업혁명 관련 신산업과 산업위기지역의 기업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는 정부가 내년에 추진할 기업활력 제고 정책과 관련이 깊다. 문재인 정부는 J노믹스 3대 축인 소득주도 성장과 공정경제의 속도는 조절하되 혁신성장 바퀴를 더 빨리 돌리면서 ‘전방위적 경제 활력 제고’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현재 공급과잉 업종으로만 제한된 원샷법 지원 범위를 4차 산업혁명 관련 신산업뿐만 아니라 산업위기지역의 기업까지 확대하면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면 기업들이 선제적인 구조조정에 나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기재부, 공정위 등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공정위는 과도한 지원 범위확대는 공정거래법 무력화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이를 반대하고 있다. 양측이 입장이 대립하자 내년 8월 일몰예정인 3년 한시법을 5년 더 연장하되, 지원범위는 관련 부처와 협의를 통해 넓히겠다는 추상적인 문구를 담는 선에서 일단 봉합했다.

산업부가 원샷법 지원 범위를 넓히려는 이유는 지지부진한 원샷법 실적 때문이다. 올해 원샷법 승인기업(11월기준 28건)은 지난해(52건)보다 절반 가량 줄어 들었다. 산업부는 원샷법의 지원 범위가 공급과잉 업종에만 한정돼 있어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사업 재편을 할 동기가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원샷법은 2015년 법 제정 당시 재벌에 특혜가 될 수 있다는 민주당(현 여당)의 반대에 부딪혀 정부는 원샷법의 적용 범위를 공급과잉 업종으로만 제한했다.

산업부는 일본의 사례를 들고 있다. 일본은 1999년 ‘산업활력재생특별법’을 통해 기업이 선제적으로 구조조정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만든 이후 2013년부터는 사업재편에만 맞춰져 있던 범위를 신사업 설비투자 등까지 확장한 산업경쟁력강화법을 시행하고 있다. 이후 스미모토금속, 샤프 등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이 선제적으로 사업재편에 나설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보고 있다.



원샷법 밑그림을 그린 권종호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대기업이 선제적 구조조정에 나서려면 정부가 지원범위를 한정하지 말고 신산업 등에 나설 경우 확실하게 지원한다는 시그널을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지원범위가 확대될 경우 대기업 규제와 관련한 공정거래법 자체가 무력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현재 원샷법에는 △지주회사 규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및 채무보증제한기업집단에 대한 규제 완화 조항이 담겨 있다. 이는 공정위가 대기업 경제력 집중 억제를 위해 규정한 핵심 제도다.

이를테면 원샷법 적용 승인을 받은 기업은 지주회사가 일정비율 이상 보유해야 하는 자회사·손자회사 지분 규제를 3년 동안 유예받을 수 있다. 자회사가 손자회사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다른 자회사와 공동출자해 신사업 진출이 가능하도록 문턱도 넓혀놨다. 이외 사업 재편과정에서 부득이하게 순환출자나 상호출자를 하게 될 경우 해소유예기간을 6개월에서 1년 연장하고, 원샷법 적용 기업이 계열사로부터 채무보증을 받을 경우 유예기간을 3년으로 연장해 자금조달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특례를 줬다. 사실상 공정거래법 상 주요 규제에 대한 혜택이 담겨 있다.

현재 ‘공급과잉’ 업종에 한정된 규제를 신산업과 산업위기지역의 기업까지 확대할 경우 문제가 복잡해 진다. 조세특례제한법 시행령에서 정의하는 신산업은 △자율주행차 △전기자동차 △인공지능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빅데이터 △착용형스마트기기 △지능형 반도체·센서 등 광범위 하다. 대기업이 신산업에 진출해 원샷법을 적용받을 경우 사실상 공정거래법 규제를 다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산업부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원샷법 특례 범위가 과하게 확대될 경우 공정거래법 효력이 사라져 문재인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인 ‘공정경제’ 기틀이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공정거래법 틀을 무너뜨리는 방식으로는 갈 수 없다는 입장”이라며 “산업부와 세부방안에 대해 협의를 계속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쟁법 전문가들은 원샷법 범위 확대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정부가 구체적으로 지원 확대 범위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 교수는 “적극적인 사업재편이 가능하도록 원샷법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는 기본 취지는 이해 한다”면서도 “하지만 특별법의 특례 범위가 지나칠 경우 기존 법 자체가 무력화될 우려가 크니 어떤 업종에서 사업재편이 어려운지 충분한 사례를 검토한 뒤 범위를 구체화 해서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2016년 8월 시행된 원샷법은 기업들이 인수·합병(M&A) 등 사업 재편을 추진할 때 적용되는 각종 관련 절차나 규제를 단일 특별법으로 묶어 한 번에 해결해줌으로써 시간과 비용 절감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되는 법률이다. 공급과잉 상태에 있는 기업에 선제적인 구조조정, 사업재편을 지원하는 취지로 상법·세법·공정거래법 등 관련 규제를 한 번에 풀어주고 세제·자금 등을 일괄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원샷법’으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