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신호등' 잠재성장률 뚝…장기침체 전조 경고등(종합)

by김정남 기자
2018.10.24 04:37:00

韓 잠재성장률, 2% 중반대 하락
생산가능인구 줄고 투자 둔화
산업 경쟁력 잃어 총체적 난국
10년 이내 1%대 추락 우려도
마이너스 GDP갭, 장기침체 전조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 경제의 신호등 혹은 나침반과 같다. 경기의 단기 과열 혹은 후퇴와 상관없이 경제가 가야 할 적정한 경로를 보여주는 것이어서다.

예컨대 TV를 만드는 A 공장의 하루 평균 생산량을 400대라고 가정하자. A 공장은 주문 강도에 따라 일시적으로 500대도 만들 수 있다. 야근을 시키든, 임시직을 뽑든 하면 된다. 하지만 매일 500대를 만들어야 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장기적으로 사람을 더 뽑거나 시설을 더 들여오거나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가격을 올려야 하는 탓이다. 이때 A 공장의 잠재적인 생산능력은 400대다. 가격을 인상하지 않고 최대한 만들 수 있는 능력이다.

한 나라의 경제도 똑같다. 수요에 따라 실질성장률이 들쭉날쭉 할 수 있겠지만, 결국은 잠재성장률로 수렴하는 게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추가 하락하고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이는 A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최신 설비의 도입이 더뎌진 탓에 생산량이 400대에서 300대로 감소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경제의 기초체력 자체가 약해지고 있다는 우려다.

23일 경제계에 따르면 주요 국책·민간 경제연구기관들은 국내 잠재성장률을 2.4~2.8%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은행(2.8~2.9%)보다 낮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보는 잠재성장률은 2.7~2.8% 정도다. 김현욱 KDI 거시경제연구부장은 “몇 년 전 구조적 장기침체를 걱정할 때 나왔던 고령화와 구조개혁 등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경제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구조적인 문제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민간의 눈은 더 어둡다. LG경제연구원은 2% 중반대로, 현대경제연구원은 2.4~2.7%로 각각 보고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있고, 기업 투자도 둔화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승석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2.5~2.6%를 제시하며 “수출 외에는 성장동력 자체가 부재하며, 실질소득이 정체돼 소비도 가라앉고 있다”면서 “총체적인 둔화 양상”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분석은 ‘따뜻한 항아리 속 개구리’ 혹평을 듣고 있는 우리 경제를 방증하고 있다.



한은도 이를 알고 있다. 한은은 최근 국정감사를 통해 “향후 잠재성장률은 (2.8~2.9%보다) 더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한은 조사국이 내부적으로 분기마다 추정하는 잠재 국내총생산(GDP)을 바탕으로 한 평가다. 한은은 갈수록 낮아지는 노동생산성을 특히 눈여겨보고 있다.

우려되는 건 1%대 잠재성장률 시대가 멀지 않았다는 경고다. KDI는 오는 2026~2030년 평균을 1.9%로 보고 있으며, 다른 민간연구기관들도 10년 안팎 이후부터 1%대로 추정하고 있다. 2%대 실질성장률이 경기 후퇴가 아니라 과열일 정도로 경제 전반이 축 처질 것이라는 뜻이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중국에 산업 경쟁력을 빼앗기면서 반도체 외에는 자본 투입을 늘리기 어려워졌다. 노동 쪽 경쟁력도 빠르게 줄고 있다”며 “잠재성장률이 빠른 속도로 낮아질 것”이라고 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더 주목할 만한 건 우리 경제가 잠재성장률만큼도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질 GDP에서 잠재 GDP를 뺀 GDP갭이 마이너스(-)일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GDP갭이 0%를 밑도는 것은 가능한 생산능력을 100%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우리나라의 GDP갭을 2012년 이후 7년째 마이너스로 추정하고 있다. 한은은 올해 플러스(+) 전환한 것으로 보고 있지만, 그 수준은 미미하다. 오금화 한은 거시모형부장은 “현재 GDP갭은 플러스든 마이너스든 0%에 붙어있는 수준”이라며 “유의미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만큼 최근 성장세는 둔화하고 있다. 한은은 올해 3분기 실질 GDP 증가율(경제성장률)을 25일 발표하는데, 금융시장은 2% 초반대(전년 동기 대비)를 점치고 있다. 지난해 1분기 이후 2.9%→2.8%→3.8%→2.8%→2.8%→2.8%의 성장률보다 낮다.

일각에서는 수년간의 마이너스 GDP갭이 일본식(式) 장기침체의 전조라는 해석도 나온다. 일본도 침체기 초엽 때 수년간 GDP갭이 고꾸라지는 이상현상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