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리스크’에 투자 올스톱…속 타는 롯데케미칼
by김미경 기자
2018.09.17 05:06:00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롯데케미칼의 인도네시아 유화단지 건설은 신동빈 회장이 석방된 후 현지에 직접 방문해야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인니뿐 아니라 다수의 해외 프로젝트도 지연되고 있다.”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이 지난 10일 ‘한-인도네시아 산업협력 포럼’에 참석해 작심하고 한 말이다. 신동빈 회장의 공백 상황이 6개월 넘게 지속되면서 그룹의 핵심 사업 및 미래 계획에 제동이 걸린 데 따른 아쉬움을 토로한 셈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2년차를 맞아 재계 11위인 KT그룹까지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지만 롯데는 총수 부재로 투자계획이 전면 보류된 상황이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롯데케미칼의 국내외 대규모 신·증설 투자가 총수 리스크에 표류 중이다. 특히 높은 성장세로 그룹의 새로운 ‘캐시카우’이자, 탈(脫)유통을 위한 ‘뉴 롯데’ 구상에 핵심 역할을 맡아온 롯데케미칼은 신동빈 회장의 구속 이후 이렇다 할 투자 계획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신 회장이 국정농단 뇌물 공여 혐의로 지난 2월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1심 재판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됐기 때문이다.
업계는 의사결정권자인 신 회장의 부재로 그룹의 투자시계가 완전히 멈춰 선 것으로 보고 있다. 롯데케미칼의 4조원대 인도네시아 석유화학단지 조성 계획이 대표적이다.
롯데케미칼의 해외자회사 롯데케미칼타이탄이 지난해 인도네시아 국영철강사 크라카타우 스틸로부터 공장 인근 부지를 매입해 초대형 유화단지 조성방안을 검토해왔지만 현재 진전된 게 없다. 그동안 롯데가 추진해온 단일 해외사업 중 최대 규모로 주목 받았으나 신 회장의 부재로 최종 투자 결정이 미뤄지면서 1년 6개월째 사업이 올 스톱된 상태다.
맞수인 LG화학과는 자연스레 비교 대상이다. 롯데케미칼과 업계 1위를 놓고 다투고 있는 LG화학은 구광모 LG 회장 체제 전환 이후 광폭 투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신성장 동력 발굴과 사업 포트폴리오 강화 등을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어서다. 이 회사는 최근 2개월 간 4조원 이상의 굵직한 투자 계획을 연이어 결정했다. 먼저 2021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전남 여수공장 확장단지 내 33만㎡(약 10만평) 부지에 2조6000억원을 투자해 나프타분해시설(NCC) 80만t과 고부가 폴리올레핀(PP) 80만t 증설에 나섰다. 증설이 완료하는 3년 후 NCC 생산능력을 총 330만t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충남 당진공장에는 산업용 초단열·경량화·고강도 소재 양산에 2000억원 이상을 투자한다. 배터리 부문에도 2조원대 투자가 예정돼있다.
이에 따라 롯데케미칼을 이끌고 있는 허수영 부회장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답보 상태가 지속될 경우 사실상 신규 투자뿐 아니라 기존 사업들에도 악영향이 미칠 수 있어서다.
문재인 정부 들어 주요 기업들의 투자 및 채용 발표 소식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재계 5위인 롯데만 투자계획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롯데로썬 뼈아프다. 공정거래위원회 시가총액 기준 10대 대기업 중 조선업 장기 불황으로 희망퇴직 실시중인 현대중공업을 제외하고 투자 계획을 내놓지 않은 대기업은 롯데가 유일하다.
롯데 측 관계자는 “신 회장은 일년의 절반 이상은 해외에서 보낼 정도로 해외사업장을 직접 챙겨왔다”며 “석유화학사업 같은 경우 조 단위의 투자가 이뤄지기 때문에 아무래도 최고경영자(CEO) 단독으로 결정하는데는 무리가 있다. 또 석유화학은 환경적 영향이 크기 때문에 글로벌 인맥도 필요한 상황인데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는 처지라 안타깝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