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썸 전산장애 손해배상은?…가상화폐 불인정·인과관계 입증 난제

by김보영 기자
2017.12.05 05:00:00

피해규모 2000억·2만명 추산…소송 1000명↑ 예상
빗썸 "불가항적 과부하…책임질 부분 책임 질 것"
거래중단·손실 인과관계 입증해야…배상 여부 미지수
정부, "가상화폐 금융·화폐 인정할 수 없어"

빗썸11.12피해자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4일 오후 3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비티씨코리아닷컴)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티씨코리아 측에 빗썸 전산 장애 피해보상안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김보영 기자)
[이데일리 김보영 기자] 국내 최대 가상화폐(비트코인) 거래소 ‘빗썸’의 전산 장애로 인해 시세하락을 겪는 등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투자자들이 집단 소송에 이어 대규모 항의 집회를 예고하는 등 사태가 일파만파 확산하고 있다. 그러나 가상화폐 거래 중단과 관련한 손해배상 소송이 이례적인데다 접속 장애와 시세하락에 따른 손실 간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려워 투자자들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빗썸11.12피해자대책위원회는 4일 오후 3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 빗썸(비티씨코리아닷컴) 본사 앞에서 ‘가상화폐 빗썸사태 피해보상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비티씨코리아 대표는 사죄하고 대책 마련 및 피해보상안을 마련하라”며 “별다른 대책 마련이 준비되지 않을 시 대규모 집회도 불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달 12일 전산 장애로 인한 피해가 발생한 지 약 한 달 만이다.

빗썸을 통해 가상화폐에 투자한 피해자들은 전산 장애가 발생한 뒤 본사 측이 별다른 대응을 보이지 않자 소송인단을 모집하고 재판을 위해 정식 변호사를 선임했다. ‘빗썸 서버다운 집단 소송모임’ 온라인 카페는 전산 장애가 발생한 날 개설한 뒤 2주 만에 7481명의 인원이 가입할 정도로 반발이 거셌다.

피해자대책위원회가 전산장애로 입었다고 주장하는 총 피해액은 비트코인 캐시로 약 2000억원 정도로 추산되며 전체 피해자 수는 약 2만명 정도에 이른다.

정찬우 피해대책위원장은 “800여명 정도가 소송을 준비 중이고, 지난 1일 이미 640명 정도가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소했다”며 “본사 측이 이번주 내로 보상안이나 대책 마련안을 내놓지 않을 시, 이르면 9일 피해자 7000여명이 모두 집결한 대규모 집회를 개최할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대책위원회는 1차 소송 인원 집계가 마무리 되는 대로 2차 소송인원 모집 절차에 돌입할 계획이다. 피해자대책위원회 측은 소송 참여 인원이 1000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앞서 지난달 12일 오후 4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약 1시간 반동안 빗썸 접속이 중단됐다. 거래가 중단된 동안 비트코인 캐시의 가격은 280만원 선에서 160만원 선까지 폭락했다. 빗썸 측에서는 거래 안정화 및 피해 최소화를 이유로 서비스 점검 이전의 거래 대기 물량을 일괄 취소했다.



투자자들은 접속 장애로 폭락 이전의 가격으로 매도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했으며, 비트코인 캐시를 매도한 주문이 자동 취소됨으로써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빗썸 측은 “이번 전산 장애는 예측 불가능한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발생했다. 투자자 법적 대응과 관련해 책임질 부분은 책임질 것”이라면서도 구체적인 피해 보상 규모는 밝히지 않았다.

거래소 내부의 기계적 과부하나 오류로 장애가 발생한 사태가 이번이 최초는 아니다. 지난 6월 미국 2위 가상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가 웹사이트 트래픽 증가로 거래가 마비된 적이 있고, 2015년 7월 뉴욕증권거래소의 거래 중단 사태 역시 거래소 내부의 기계적 과부하로 중단된 대표 사례로 통한다.

그러나 이번 소송으로 투자자들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기계적 전산 장애와 시세 하락에 따른 손실 및 매매기회 상실 간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려워서다.

김성훈 법무법인 한누리 회계사는 “빗썸 측에서 미리 서버 다운의 위험성을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거래소를 운영했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다면 손해배상책임가능성이 높아지겠지만, 단순히 거래가 중단돼 1시간 30분동안 주문을 넣지 못해 손실을 입었다는 주장만으로 법원이 손실을 인정할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했다.

정부에서 가상화폐를 화폐나 금융상품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김성훈 회계사는 “가상화폐는 정부에서 인정받는 법정화폐나 금융 당국의 보호와 감독을 받는 금융투자 상품이 아니다”며 “거래 중단이나 해킹 등 빈번하게 발생하는 사고에 대한 제재는 물론 가상통화 거래 도중 발생할 수 있는 피해에 투자자들이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법적 근거 등도 전무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정부는 ‘가상통화 대책 TF’를 발족해 가상통화 거래를 엄정 규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정부는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가 본질적으로 권리 의무 관계 등 내재된 가치가 없고 가치와 강제통용을 보증하는 국가나 기관도 없어 금융상품이나 화폐로 볼 수 없다고 규정했다.

정부는 “현재의 가상화폐는 현금으로 지급 보증이 되지 않고 금액 표시도 없어 합법적 전자화폐가 될 수 없다”며 “유관부처와의 협의 및 여론 수렴 등 준비과정을 거친 뒤 가상통화 거래규제법 제정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