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외국계 IB 주목받는 JY
by조영훈 기자
2015.12.24 06:00:00
[이데일리 조영훈 부국장 겸 산업부장] 크리스마스가 길거리에서 사라졌다. 엘니뇨 현상때문에 지구촌의 겨울이 너무 덥다. 역설적으로 마음은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이다. 미국의 금리인상을 비롯해 바닥으로 떨어진 성장률은 중국발 스모그처럼 우리경제를 시계 제로의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 걱정이 그래서 태산이다.
연말 인사철을 맞아 축하인사를 전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월급쟁이의 꽃인 ‘임원’이 된 분들보다 조용히 책상을 치우고 홀연히 사라져버린 지인들의 안부가 걱정되는 게 인지상정이다. 자영업자의 침몰이 더욱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게 냉혹한 현실이다.
1998년 외환위기 시절이 자꾸 떠오른다. 연공서열식 문화에서 고참이 먼저 자리를 떠나던 그 시절.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2015년 명예퇴직에도 ‘자비’는 없다. 두산인프라코어에서 촉발된 ‘20대 명퇴시대’가 요즘 우리사회의 자화상이다. 오죽했으면 송년모임에 온 박용만 두산 회장이 “하루 전 1시간도 자지 못했다”고 고백했을까. 박 회장이 신입사원 명퇴에 대해서는 없던 일로 했다고 하지만 30대 대리, 과장의 명퇴까지 취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발점은 삼성이었다. 이재용(JY) 삼성전자 부회장은 차가운 사람인가.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한창 때에 비해서는 모자라지만 그래도 올해 26조원대에 이를 전망이다. 상황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리 생각할 법도 싶다. 삼성은 올해 IMF 이후 최대 규모의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조선과 엔지니어링, 합병한 삼성물산에서도 인력 조정이 이어졌다. 이익 구조가 양호했던 화학과 방산부문을 매각한 것도 JY의 승부수였다. 삼성이 먼저 나서니 하나 둘 다른 기업들도 따라나서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정년 연장이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있다는 평가도 흘러나온다.
이 부회장이 전용기를 팔면서 솔선수범하고 판매관리비 절감에 적극적으로 나서니 ‘분위기’가 그쪽으로 잡히고 있는 셈이다. 원망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 중에는 “이 부회장이 오버한다”고 볼멘 소리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삼성물산 통합으로 지배구조 개편의 초석을 다진 이 부회장이 ‘JY WAY’로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룹 원로들에게 모양을 갖춰 퇴로로 만들어주고 ‘차세대 주자’를 발탁한 것도 이달에 단행한 인사의 특징이다. 서운한 사람이 생기니 뒷말이 어찌 없으랴.
흥미로운 점은 외국계 투자은행(IB)들은 JY의 행보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만난 외국계 IB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구조조정의 모범사례를 보여주고 있다”면서 “선제적인 구조조정은 효과도 크고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했다. 이말을 듣고 생각나는 분이 있었다. IMF 이후 부도기업을 살려낸 한 전문경영인은 “발가락이 곪아 썩어들어갈 때 발목을 자르는 것이 구조조정”이라며 “발가락 만 잘라내서는 목숨을 보전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은퇴하면 산사에 다니며 일자리를 잃었던 직원들에게 평생 사죄하면 살겠다”며 괴로운 심정을 표현했었다. 구조조정 시기를 놓쳤을 때 아픔이 더 크다는 얘기다.
이 부회장이 총대를 멘 선제적 구조조정은 효과를 볼 것이다. 삼성페이·반도체 투자 등 IT의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새 먹거리로 BT(바이오기술) 사업을 강화한 구조개편은 글로벌 트렌드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높다. 가벼운 몸집은 앞으로 삼성의 강점이 될 것이다. 재계의 다른 기업들도 흐름에 동참하고 있어 대기업 부문의 턴어라운드는 어떤 식으로든 성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내수 기반이 무너지고 빈부격차가 더 커지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이 그 해법을 찾는 노력에 올인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