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은행 구제금융, 3곳으로 확대…금융위기 번질라
by이정훈 기자
2014.12.28 08:50:33
트러스트 지원액 3배 증액..VTB-가즈프롬뱅크도 지원
구제금융만 9조 육박..예금이탈-차입차단 `후폭풍` 커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루블화 불안과 국제유가 추락으로 러시아 경제에 어려움이 커지면서 은행들이 잇달아 중앙은행과 정부에 손을 벌리고 있다.
구제금융을 받은 은행만 벌써 세 곳으로, 지원금도 9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은행간 차입금리도 급등하면서 기댈 곳도 없는 만큼 구제금융 확대가 금융위기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2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러시아 중앙은행은 지난 23일 첫 구제금융을 신청했던 예금규모 기준으로 러시아내 15위 은행인 트러스트 은행에 자금을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당초 300억루블을 1차 구제금융 지원자금으로 제공했지만, 트러스트측이 1주일도 안돼 이 자금 대부분을 소진하자 구제금융 지원액을 3배 이상인 990억루블(약 2조700억원)로 확대하기로 한 것.
러시아 정부는 또 일종의 국부펀드인 러시아 국가복지기금(National Wealth Fund)을 통해 자산규모로 러시아내 2위 은행인 국영 VTB에 올 연말까지 1000억루블, 내년중에 1500억루블을 순차적으로 지원하고, 가즈프롬뱅크에도 700억루블을 제공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들 3개 은행에 지원되는 구제금융 자금만 해도 무려 4190억루블(약 8조7500억원)에 이르게 되는 셈이다.
앞선 지난 25일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루블화의 불안정한 시기는 이제 끝났다”며 통화위기의 종식을 선언했다. 실제 2주일전까지 달러당 80루블대까지 급락하던 루블화는 러시아 정부와 중앙은행의 잇딴 대책으로 인해 현재 50달러대까지 반등한 상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러시아 정부의 자신감과 달리 이번 주요 은행들의 구제금융 지원을 감안할 때 루블화 추락에 따른 후폭풍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러시아 대형 금융기관 임원은 “(루블화 추락에 따른 금융 위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앞으로 새해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걱정하면서 모두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루블화 추락으로 러시아 은행들의 자산 건전성이 크게 악화된 가운데 러시아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17%로 6.5%포인트나 한꺼번에 올리자 러시아 은행간 무담보 하루짜리(오버나잇) 초단기 금리인 모스프라임(Mosprime)도 급등해 은행간 자금 차입이 사실상 마비됐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대형은행에선 예금 이탈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실제 트러스트 은행은 지난 한 주간 30억루블의 예금 이탈을 경험했고 소매예금 비중이 큰 대형 은행들에서도 예금이 줄고 있다.
실루아노프 장관도 이날 VTB와 가즈프롬뱅크에 대한 지원 방침을 밝히면서 “이제 우리는 시스템적으로 중요도가 높은 은행들을 지켜야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이미 대형 은행들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시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