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양호 신드롬' 막 내리고..권오규·구본진 'IB스타' 부상

by김영수 기자
2014.09.18 06:00:00

[이데일리 김영수 기자] 권오규(행시 15회)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최근 미국계 부동산 금융그룹인 스타우드캐피탈의 자회사인 발벡코리아의 대표이사 회장으로 영입되면서 모피아(MOFIA·옛 재무부를 뜻하는 영문 명칭인 MOF와 마피아를 합성한 말) 출신의 금융권 진출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세월호 이후 ‘관피아’ 논란으로 입지가 좁아진 관료들이 대학 강단과 함께 금융권 진출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는 얘기다.

2005년 변양호(행시 19회) 전 금융정책국장이 재정경제부를 뛰쳐나와 보고펀드를 설립할 당시만해도 모피아의 금융권 진출은 낯선 풍경이었다. 하지만 권 전 부총리와 같은 고위 관료 출신이 외국계 금융회사 대표로 변신할 만큼 금융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모피아의 금융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희비가 엇갈리는 사례도 늘고 있다. 투자성과를 내지 못하면 발붙이기 힘든 금융권에서 모피아의 금융인 진출은 스타로 변신할 수 있는 기회이면서도 수렁으로 빠질 수도 있는 모험인 셈이다.

모피아의 금융권 진출은 변양호 보고펀드가 대표가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변 대표는 2005년 보고펀드를 설립하며 사모펀드(PEF) 업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후 LG실트론, 비씨카드, 동양생명, 아이리버, 버거킹 등을 연이어 인수하며 창업 9년 만에 약정액 약 2조원를 돌파하는 성장세를 보였다.

업계에서는 변 대표를 ‘국내 사모 펀드 1세대 대표 주자’로 일컫는다. 관료로서는 조기 퇴직했지만 국내 자본시장에 사모 펀드가 뿌리내리는 계기를 마련하는 등 그가 이룬 공이 작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본진(행시 24회) 트루벤인베스트먼트 대표도 모피아 출신 금융인이다. 경제기획원 예산실, 기획예산처 정부개혁실, 기획재정부 정책조정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그는 지난 2012년 PEF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며 설립 1여년 만에 1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했다.

투자금융(IB)업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모피아도 있다. 전병조(행시 29회) KB투자증권 부사장은 재정경제원 시절 금융정책과와 재정경제부 시절의 지역경제정책과,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그리고 기획재정부 고위공무원을 지낸 뒤 2008년 증권업계에 발을 디뎠다. NH투자증권 IB부문을 총괄한 그는 지난해 KDB대우증권 IB사업부문 대표(부사장)로 자리를 옮긴 지 1년 만에 KB투자증권에 새 둥지를 틀게 됐다.

대통령 경제비서실 행정관, 재정경제부 경제홍보기획단 총괄기획과장 등을 거친 방영민(행시 25회) 삼성증권 부사장은 지난 2003년 삼성전자에서 삼성증권으로 자리를 옮겨 IB사업본부장을 거쳐 현재 SNI본부를 총괄하고 있다.



재정경제부 사무관·서기관 등을 지낸 이현승(행시 32회) SK증권 사장은 지난 2001년 A.T. Kearney 경영컨설팅으로 자리를 옮긴 뒤 메릴린치IB, GE코리아를 거쳐 지난 2008년부터 SK증권을 이끌고 있다.

비(非)모피아출신이 사모펀드를 설립한 사례도 있다. 올 3월 수출입은행장에 선임돼 10년 만에 은행으로 복귀한 이덕훈 행장이 대표적이다. 서강대 수학과·경제학과 출신인 이 행장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대한투자신탁 사장, 우리은행장(우리금융지주 부회장) 등을 거쳤다. 우리은행장 퇴임 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을 지내다 2012년 우리금융 민영화에 참여하기 위해 사모펀드인 키스톤프라이빗에쿼티를 설립해 회장을 맡기도 했다.

최근 LG실트론 투자 실패로 사의를 표명한 변양호 대표와 같이 모피아 출신의 금융권 진출에는 씁쓸한 이면이 존재한다.

앞서 보고펀드는 2007년 LG실트론 상장 추진을 목적으로 투자 자금을 모았다. KTB프라이빗에쿼티와 손잡고 ‘LG실트론인수금융’을 통해 LG실트론 지분 49%를 사들였다. LG실트론은 실리콘 웨이퍼를 만드는 LG그룹 계열사다.

그러나 LG실트론의 상장이 무산돼 투자금 회수에 실패했고 결국 우리은행·하나은행 등 금융권에서 빌린 2250억원을 갚지 못했다. LG실트론 투자가 최종적으로 부도난다면 보고펀드로서는 첫 투자 실패 사례가 되는 셈이다.

보고펀드는 LG실트론 투자 실패의 책임을 가리기 위해 LG그룹과 임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결과론적으로는 보고펀드의 첫 투자실패로 남게 됐다. 투자실패로 인한 여파로 변 대표가 사의를 표명한 가운데 보고펀드라는 이름도 추후 바꿀 예정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권오규 전 부총리의 IB 업계 진출은 장관급 이상 고위 관료 출신이 법무법인 고문이나 대학교수 외에 다양한 직업군으로 진출하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실적을 내야만 성공할 수 있는 금융권에서 모피아 출신 금융인 역시 실적에 대한 부담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