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부동산 자본 대공습] 중국, 제주·인천·부산에 '투자 하이킥'

by박종오 기자
2014.04.08 07:03:00

중국 '뭉칫돈' 국내 개발 열기.. 2006년 이후 5조원 투자
국내 개발업체는 고사 위기.. PF시장 4년새 반토막

[제주=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Northeast Asia core Chinese Communities(동북아시아의 핵심 중국인 커뮤니티)’

지난 6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토평동. 서귀포 앞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완만한 구릉지의 대형 건설 현장 가림막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현장 내 2층짜리 홍보관 앞에 멈춰선 승합차에서 중국인 여성 3명이 내리자 짧은 머리에 회색 정장을 입은 건장한 남성이 다가섰다. 이윽고 시작된 것은 우리와 다른 중국 뤼디그룹 만의 독특한 분양 마케팅이었다. 영상 감상, 단지 소개, 모델하우스 방문, 상담으로 이어지는 맞춤형 홍보 절차는 1시간 이상 이어진다고 했다.

뤼디그룹은 이곳에 사업비 1조1000억원 규모의 휴양형 주거시설인 헬스케어타운을 조성한다. 현재 1단계로 입주를 시작했거나 앞둔 콘도미니엄 400가구(1채당 7억~8억5000만원 선)를 분양하고 있다. 여기서 얻은 수익금은 호텔과 워터파크, 쇼핑몰 등 아직 착공하지 않은 2단계 사업비로 사용한다. 현장 분양 관계자는 “분양 물량 중 이미 250가구 가량 팔렸다”며 “계약자 대부분이 한국 영주권을 받길 원하는 중국인들”이라고 말했다.

국내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깊은 시장 침체의 늪 속에서 암흑기를 보내는 사이 중국 개발 자본의 한국 진출 바람이 거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2~2013년 중국 법인과 개인이 국내 토지 6489개 필지(총 300만㎡)를 사들였다. 이는 여의도 면적(290만㎡)과 맞먹는 규모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암흑기를 맞은 국내 디벨로퍼의 자리를 중국 부동산 개발 업체들이 빠지게 차지하고 있다. 중국 뤼디그룹이 제주 서귀포시 토평동 ‘제주헬스케어타운’ 안에 지은 콘도가 중국인 부호들의 입주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박종오 기자)
사업 진출이 가장 활발한 곳은 제주지역이다. 제주도청 자료를 보면 2006년부터 이곳에 유치한 외국인 투자 사업 총 18개 중 12개에 중국 기업이 뛰어들었다. 총 사업비 7조3282억원 가운데 4조6849억원(64%)을 차지한다. 드림타워를 포함하면 사업비 규모가 5조원을 훌쩍 웃돈다.

중국 자본이 제주도를 낙점한 것은 입지와 제도적 장점 때문으로 분석된다. 최근 자국의 부동산시장 성장세가 주춤하고 주택 투자 규제마저 강화된 가운데 관광산업이 연 10%씩 고도성장하자 중국 개발업체들은 인근 국가의 레저·휴양시설 개발로 눈길을 돌리는 추세다. 비행기로 불과 2~3시간이면 도달하는 제주도의 입지 여건과 빼어난 자연 환경 등 잠재적 발전 가능성을 높이 사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투자 이민제’는 중국의 개발 열풍에 불을 지폈다고 평가받는다. 이 제도는 특정 지역 콘도·펜션·별장 등에 5억~7억원 이상 투자한 외국인에게 영주권을 주는 것으로, 국내에선 제주도가 2010년 2월 처음 도입했다. 중국 개발업체들로선 이민·레저 선호가 높은 부호들의 뭉칫돈을 제주도에 짓는 콘도·호텔 분양 수요로 끌어들일 수 있는 새 시장이 열린 셈이다.

뤼디그룹 관계자는 “최근 중국의 대기 오염 등으로 인해 거주 환경이 악화하고 부동산시장마저 둔화하면서 외국으로 눈길을 돌리는 수요자가 많다”고 말했다. 장위량(張玉良) 뤼디그룹 대표 역시 “제주도 개발 투자의 목표 고객은 한국인이 아니라 중국 국내의 거대한 부동산 구매 소비시장”이라며 “이를테면 국내 시장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타 지역도 중국 자본의 개발 열기가 뜨겁다. 관광산업 발전 가능성과 투자 이민제라는 두 가지 사업 조건을 갖췄다는 전제 아래서다. 투자 이민제는 제주도 외에도 강원도, 부산시, 인천경제자유구역, 전남 등에 추가로 적용하고 있다. 이 중 각광받는 곳은 상대적으로 중국인 접근성이 높은 인천과 부산이다. 부산지역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중국의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해운대와 기장군, 동부산관광단지에 투자 의사를 전달했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들이기로 한 영종도도 마찬가지다. 중국 랑룬그룹은 카지노를 조성하는 미단시티 서쪽에 대형 쇼핑몰과 중국식 리조트를 추가로 건설할 계획이다. 인근 E공인 관계자는 “미단시티 일대에 호텔이나 리조트 지을 땅을 찾는 중국 업체들의 문의가 늘고 있다”며 “땅값도 2009~2010년 고점 대비 70~80% 선까지 회복한 상태”라고 전했다.

중국 개발 자본 중 ‘큰 손’으로 통하는 뤼디그룹은 제주도 투자뿐만 아니라 무산된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개발 사업권의 부분 인수는 물론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 매입까지 검토하고 있다. 뤼디그룹은 서울을 중심으로 3조~5조원 가량을 추가로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사정이 이렇자 다른 지자체들도 정부에 투자 이민제 규제 완화를 요청하는 등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 개발업체들의 눈에 들기 위해 너나 할 것 없이 먼저 개발의 발판을 마련해 주겠다며 나선 것이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관계자는 “강원도 등 타 지자체도 외자 유치 차원에서 뤼디그룹 등 거대 개발기업을 붙잡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개발 자본이 활개를 치는 것과 달리 국내 디벨로퍼들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2008년부터 5년간 부동산 경기가 장기 하락 곡선을 그리면서 자금 줄이 막혀서다. 지금까지 국내 부동산 개발 사업은 덩치가 작은 영세 시행사가 대형 시공 건설사의 신용을 등에 업고 자금을 조달해 추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시공사가 은행에 연대보증을 서주고 PF(프로젝트파이낸싱) 자금을 대출받아 이 돈으로 땅을 사고 건물을 지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구조가 완전히 망가졌다. ‘부동산 시장 침체→건설업체 도산→저축은행의 PF부실채권 급증 및 연쇄 도산’으로 이어진 일련의 연결 고리가 원인이다. 부동산 시장 호황기에 ‘땅 짚고 헤엄치기’식의 개발 사업에 군소리 없이 돈을 댔던 국내 대형 건설사들은 이제 군살 도려내기에 여념이 없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건설사들의 감축 노력으로 2009년 말 50조 9000억원에 달했던 시중은행의 PF 대출 잔액은 작년 말 기준 21조5000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국내 건설사들은 개발에 직접 뛰어들기보다 단순 시공만 맡는 경우가 늘고 있다. 예컨대 국내 시공능력평가순위(작년 기준) 10위인 한화건설은 중국 뤼디그룹이 추진하는 제주헬스케어타운과 드림타워 사업의 도급 업체로 일하고 있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지금은 금융기관도 대출 회수에만 혈안이 돼 있어 신규 PF를 일으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처지”라고 푸념했다.

중국 업체가 국내 대형 개발 사업을 휩쓸면서 생긴 부작용이 없지 않다. 개발 사업 대부분을 중국이 독식한 제주도에서는 최근 ‘신(新) 쇄국 바람’이 불고 있다. 제주시에 거주하는 김영수(37)씨는 “지난 몇 년 사이 중국인 관광객이 급증하고 기업들의 투자액도 늘었다지만 체감하기 어렵다는 사람들이 많다”며 “중국 자본 자체를 불편하게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중국 업체가 투자를 미루거나 수익성을 위해 사업 계획을 바꾸는 일이 잦아서다. 실제로 2008년 이래 중국계 기업이 참여한 14개 사업의 총 사업비 규모는 7조841억원이지만, 제주도에 도착한 외국인직접투자(FDI)액은 3833억원에 그친다. 땅만 사놓고 투자 이행률은 5%에 불과한 것이다. 또 드림타워 등 4개 사업에 뛰어든 중국계 기업들이 일제히 카지노 시설을 유치하겠다고 나서면서 논란이 한층 커지는 추세다.

일각에서는 중국 자본의 공격적인 투자에 우려의 눈길을 던진다. 중국발 부동산 시장 거품 붕괴의 여파가 국내에 진출한 업체에까지 옮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중국 저장성의 싱룬(興潤) 부동산이 6000억원대 부채 부담으로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내면서 의심이 현실화하고 있다. 김명신 코트라(KOTRA) 상하이무역관 차장은 “중국 정부가 자국 부동산 시장에 상당한 버블이 있다고 판단해 강력한 규제 정책을 쓰고 있다”며 “당분간 부동산 시장의 침체 영향으로 몇 개 기업이 추가로 도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