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노컷뉴스 기자
2007.09.22 09:43:27
사상 최악의 태풍 피해..복구 ''구슬땀''
[노컷뉴스 제공] 사상 최악의 태풍 피해를 본 제주도민들에게 다가오는 추석은 먼 나라 명절이 됐다. 집을 잃은 주민부터 복구를 돕는 자원봉사자까지 추석은 이미 잊혀진 명절일 뿐이다.
제주시 용담동에서 화장품 가게를 하던 박영란(62, 여)씨는 태풍 나리가 쏟아낸 물폭탄에 삶의 터전을 빼앗겼다.
하천 범람으로 화장품은 모두 쓸려 갔고 가게도 절반 가량이 부서졌기 때문이다.
살 길이 막막한 박 씨에게는 추석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사치다.
박 씨는 "영(이렇게) 하지도 못하고 정(저렇게) 하지도 못하고 살 길이 없어 넋만 놓고 있다"며 심경을 말한 뒤 "추석이 대수냐, 어떵(어떻게) 살지도 막막한데 추석은 무슨...."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집이 침수된 김두진(76) 할머니에게도 추석은 먼나라 얘기가 돼버렸다.
김 할머니는 "이 난리통에 추석 준비 잘하고 못하고가 중요하냐"며 "그 날 밥상에 숟가락만 놓고 '이렇게 지냅니다' 해도 잘 했느니 못 했느니 할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특히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복구작업은 심신을 지치게 하고 들어갈 집도 없는 현재 상황을 생각하면 다가오는 추석이 피해 주민에게는 오히려 더 고통스럽다.
제주시 용담1동 김정현(64) 씨는 "음식은커녕 잠잘 곳도 없는 상황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며 "복구가 어느 정도 안정돼야 추석도 제대로 보낼 것 아니냐"고 반문한 뒤 "지금 이 상태에서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조상님도 이해하겠지 뭐…"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제주에 파견된 군 장병들도 이미 추석은 잊었다. 육군 공병단 소속 임기옥 중위는 이번 추석 때 고향인 경북 상주를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모두 반납했다. 임 중위는 "고향에 못 가지만 더 소중한 일을 하고 있다"며 어머니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임 중위는 "추석때는 못 가지만 좋은 일 하러 제주에 왔으니 너무 염려하지 마시라"는 말로 가족들을 안심 시킨 뒤 "우리 소대원들 건강하게 이끌고 제주도에 큰 도움 준 다음 무사히 돌아가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