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간 노동 조장해 건강권 위협”vs“경제위기에 근로시간 유연화 절실”…노사 ‘팽팽’

by최정훈 기자
2023.04.27 05:00:00

[제 1회 노동개혁 고용정책 심포지엄]
한국노총·대한상의·새로고침 등 참여…노동개혁 의견 쏟아내
勞“주69시간제는 폐기해야”vs使 “경제위기 타계 마지막 수단”
“생산성 방법 정부가 지원해야…MZ세대 유연화 인식 차 커”

[이데일리 최정훈·김은비 기자] ‘주 최대 69시간제’라 불리는 근로시간 제도개편안에 대한 정부의 대규모 여론 조사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노동계와 경영계, 학계가 머리를 맞댔지만, 입장 차이는 여전했다. 노동계는 장시간 노동을 방지하고 휴식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개편안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경영계는 경제 위기 상황을 타계할 마지막 수단이 노동개혁이라고 강조했다.

제1회 노동개혁 고용정책 심포지엄이 26일 서울 중구 통일로 KG타워 하모니홀에서 열렸다. 윤동열(왼쪽부터) 대한경영학회 회장을 좌장으로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2본부장,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 김정민 이데일리TV 국장, 임무송 인하대 초빙교수, 유준환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 의장이 토론을 하고 있다.(사진=노진환 기자)
26일 이데일리·이데일리TV와 대한경영학회가 공동 주최한 제1회 ‘노동개혁 고용정책 심포지엄’에서는 노동계와 경영계, 학계 등이 참여해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쏟아냈다. 특히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주 최대 69시간제’라 불리는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두고 경영계와 노동계가 팽팽하게 맞섰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주’ 단위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월, 분기, 반기, 연’ 단위 다양화하는 내용의 근로시간 제도개편안을 발표했다. 11시간 연속휴식권 보장 시 1주 최대 69시간, 휴식권을 보장하지 않으면 최대 64시간을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일이 많을 때 일주일에 최대 69시간까지 몰아서 일하고, 일이 적을 때는 푹 쉴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이지만, 과로와 장시간 노동을 조장할 것이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개편안에 대한 재검토 지시까지 내렸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2본부장은 “윤석열 정부는 노동개혁을 사용자 단체의 민원 해결 차원에서 접근하면서 시작했다. 개편안은 잘못된 인식과 접근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 본부장은 잘못된 접근방식이 노사 자율적 선택권만 강조하는 형태가 되면서, 근로자의 건강권과 안전 보건은 무시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회복을 위해선 규칙적인 휴식이 보장돼야 한다”며 “특히 연장근로는 노사 자율 선택에 맡길 것이 아니라 강행 법규를 통해 장시간 노동을 방지하고 건강권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제1회 노동개혁 고용정책 심포지엄이 26일 서울 중구 통일로 KG타워 하모니홀에서 열렸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2본부장이 ‘노동시간 제도개편의 영향과 과제’를 주제로 발언하고 있다.(사진=노진환 기자)
반면 경영계는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낮은 우리나라 현실에서 경직된 근로시간 제도를 유연하게 만들지 않으면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은 “기업 활동은 위축하고, 수출·생산은 줄고, 재고는 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개혁은 우리나라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 정규직 근로자의 1주 평균 근로시간을 비교해보면 과도한 장시간 근로라고 보기 어려운 반면,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주요 선진국에서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라며 “현실적으로 주문량이 증가하거나 업무량 폭증 등 업무 집중이 필요한 경우 현행 주52시간제로는 대응이 어렵기 때문에 근로시간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연장근로 통계에 대해서도 시각차를 보였다. 특별연장근로는 특별한 사정으로 1주 12시간의 연장근로를 초과해 근로해야 하는 경우 근로자의 동의 및 고용부 장관의 인가를 거쳐 추가적인 연장근로를 할 수 있는 제도다. 코로나19 당시 ‘업무량 폭증’도 인가 사유에 포함되면서 2019년 한해 908건 수준이던 인가 건수가 지난해 7월말 기준 5793건으로 늘었다.

유정엽 본부장은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를 업무량 폭증으로 확대한 후 인가량이 400배 정도 증가했고, 정부는 90% 가까이 승인하고 있다”며 “합법적으로 장시간 근로를 할 길을 열어주면 사용자가 악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걸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반면 강석구 본부장은 “인가 건수가 폭증한 것은 제도의 틀이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고용부 고용정책실장을 지낸 임무송 인하대 초빙교수와 MZ세대 노조라 불리는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의장인 유준환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 노조 위원장도 참여해 근로시간 제도개편안에 대한 정부와 MZ세대의 시각도 엿볼 수 있었다.

제1회 노동개혁 고용정책 심포지엄이 26일 서울 중구 통일로 KG타워 하모니홀에서 열렸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노진환 기자)
임무송 교수는 “근로시간 논의의 대전제는 법과 노사의 역할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점”이라며 “이론적으로 정부의 개편안이 최장 69시간까지 가능하고 현행 제도로도 주 69시간 근무를 할 수 있지만, 사용자도 근로자들이 장시간 노동 선호하지 않는 것 알기 때문에 그렇게 운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근로시간을 지속적으로 줄이면서 생산성을 높일 방법을 노사가 찾고 정부가 뒷받침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유준환 의장은 “일반적으로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쓴다고 하면 법정근로시간인 40시간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걸 생각하지만, 개편안은 연장근로시간 총량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며 “한 주에 44시간을 일하면 다음 주에 36시간 일하는 걸 생각하지, 이번 주 60시간 일하고 다음 주 48시간 일한다고 생각하는 근로자는 없다”며 “정부는 노사 자율적 합의로 시행할 수 있다고 하지만, 투표로 선출되는 근로자대표 한 사람이 사용자와 대등하게 협의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한켠에선 근로시간 제도개편안을 보완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는 대규모 설문조사에 대한 제언도 쏟아졌다. 고용부는 4억 6000만원을 들여 8월까지 국민과 노사 이해관계자 등 6000명을 대상으로 대규모 설문조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강석구 본부장은 “조사 대상자에게 근로시간 제도 자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어려운 중소기업의 현실도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유정엽 본부장은 “설문조사보다 중요한 것은 반대하는 의견에 대한 우려를 담을 수 있는 대책이 무엇인가이고, 이는 오랜 대화가 필요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