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정현 기자
2022.08.19 05:30:54
부동산 분양 얽히면 PF 대출 와르르
브릿지론 열 올린 소형 캐피탈사 ‘촉각’
조달비용도 2년새 4%→7% 사업지연시 위기
중형 증권사도 비수도권 PF 비중 커 우려
[이데일리 김정현 기자] 부동산 호황기 동안 부동산 금융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취급되면서 캐피탈사와 카드사, 증권사 등 2금융권이 경쟁적으로 PF 대출을 늘린 가운데 위기가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한 프로젝트에 투입하는 ‘브릿지론’(땅 매입 작업에 투입하는 자금)에서 부실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소규모 캐피탈사와 증권사 등에서부터 부실이 번질 수 있어 보인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증권사와 보험사, 저축은행의 PF 대출 규모는 지난해말 73조1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올해 상반기까지도 여전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어 현재 잔액 규모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캐피탈사, 카드사 등 여전사 PF 대출을 합하면 그 규모는 더 늘어난다. 한국신용평가가 집계한 25개 캐피탈사의 PF 대출은 올해 3월 기준 20조원을 넘어섰다.
증권사의 PF 대출 규모는 2020년말 17조1000억원에서 21조6000억원으로 1년 새 26.3% 늘었다. 보험사는 36조4000억원에서 42조원으로 15.4% 늘었고, 올해 1월 말에는 42조2000억원까지 확대됐다. 저축은행은 6조9000억원에서 9조5000억원으로 37.7% 증가했다. 올해 1분기에는 10조4000억원에 달했다.
PF 대출은 최근 수년간 이어진 부동산 초호황의 산물이다. 부동산 가격이 지속적으로 급등하면서 삽만 떴다 하면 돈방석에 오르는 상황이 계속된 것이다. PF대출 금리가 중순위는 6~8%에 달했고, 브릿지론은 20%를 넘어가는데다 부동산 불패신화가 이어지면서 부실 위험은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다. 미국을 선두로 글로벌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급격히 올리고 있고, 원자재 가격도 치솟으면서 대출 부실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고위험 대출을 대거 늘린 금융사부터 부실 폭탄을 맞을 가능성이 커졌다. 소형 캐피탈사가 대표적이다. 캐피탈사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PF대출 가운데서도 브릿지론에 대해서는 별 다른 규제를 받지 않았다. 고위험 대출인데도 위험이 가려져 있었던 것이다.
브릿지론이란 시행사가 본격적인 개발사업을 진행하기 직전, 땅 매입 비용 등에 대출을 해주는 것을 말한다. 부지매입에 1000억원이 들어간다면 부지를 담보로 매입 계약금(통상 매맷값의 10%)에 필요한 100억원 등을 대출해준다. 이는 본 PF로 넘어갈지조차 불확실한 상황이어서 고위험 고수익 대출로 분류된다. 통상 20% 이상 금리를 부담해야 한다.
조달비용이 높아 고수익 사업이 필요한 소형 캐피탈사들이 브릿지론에 뛰어든 이유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3월 기준 신용등급이 BBB인 캐피탈사의 영업자산 가운데 PF대출은 18%, 부동산담보대출은 41%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부담대에는 올해 이전에 실행된 브릿지론이 대거 포함돼 있다.
문제는 최근 부동산 경기 하강으로 브릿지론이 본 PF까지 연결되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치명타다. 브릿지론에서 담보로 잡은 부지는 프로젝트 준공을 가정한 가치가 선반영돼 일반적으로 가격이 높다. 준공이 안 되면 담보를 청산해도 자금회수가 힘들다.
설상가상, 캐피탈사의 자금조달 여력은 줄어들고 있다. BBB 등급 캐피탈채 금리(1년물)는 2020년말까지만 해도 4.8%였지만 작년(2021년말) 5.1%를 거쳐 8월 현재는 7.1% 수준으로 치솟았다. 그마저도 채권발행이 쉽지 않다. 브릿지론이 길어지면 연체 확률이 급증한다는 것이다.
김영훈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지난해까지는 PF 대출 규제만 있어서 ‘회색지대’가 있었다”며 “LTV가 77%이상인 브릿지론은 올해부터 PF로 관리되지만 지난해까지는 사실상 관리가 안됐다”고 봤다. 그러면서 “브릿지론 담보로 잡힌 토지가격이 크게 올라 브릿지론의 본 PF 전환이 건전성 지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도 “브릿지론은 본 PF로 전환되느냐 여부가 중요한데, 최근 PF 사업이 부진한 상태”라면서 “특히 분양이 어려운 지역의 브릿지론은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증권사의 경우 자본규모 1조원 미만 5000억원 이상인 유진·이베스트·DB·다올·부국·SK증권 등 중형사를 중심으로 PF 대출 위험에 크게 노출돼 있는 상태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올해 3월말 중형 증권사의 PF 우발부채 및 대출채권 규모의 자기자본 대비 비율은 54%에 달했다. 이는 40%대를 기록한 대형사나 30%대를 나타낸 초대형사를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기 직전인 2019년 말 중형 증권사는 부동산 익스포저(위험노출)가 비교적 작았던 탓에 PF 규제 영향을 적게 받아서다. 중형사는 이에 2020년 초대형사와 대형사의 PF 딜 감소분을 적극 흡수했고, 2020~2021년 자산시장 호황에 힘입어 확충한 자본을 활용해 부동산 금융 영업을 강화했다.
특히 중형사의 PF 대출은 비수도권 지역에 치중돼 있어 위험이 더 큰 상황이다. 부동산 경기가 식으면서 대구, 세종, 대전, 부산 등 비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집값 하락과 미분양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예리 나이스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결국 PF 대출 채무자는 분양대금을 확보해 PF 대출 금액을 상환해야 하는데 분양이 부진한 경우 상환이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선순위라면 미분양 담보대출을 통해서라도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겠지만 중순위 후순위는 자금 회수가 어려워진다”고 평가했다.
강경훈 동국대 교수는 “우리나라 부동산시장은 풍선이 부풀어 오를대로 올라 있는 꽤 위험한 상태”라면서 “어떤 충격이 왔을 때 위험이 현실화될 수 있다”고 했다. 아울러 “연체율은 항상 늦게 나오는 지표다. 연체율이 상승하기 시작하면 그건 이미 곪을 대로 곪은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