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당` 강권 앞서 `직무유기`부터 돌아보라[여의도 백드롭]

by이성기 기자
2022.01.22 08:00:00

정청래, `봉이 김선달` 비유에 불교계 반발 여전
`이핵관`·조응천 의원, `선당후사` 명분 자진 탈당 주장
오랜 현안, 갈등 조정 중재 소홀 반성이 먼저

[이데일리 이성기 기자] 더불어민주당 내 `문제적 혹은 논쟁적`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손꼽히는 정청래 의원(서울 마포을)이 21일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의원은 이날 오후 국회 소통관을 찾아 `불교계에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는 제목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전국승려대회가 열린 서울 종로구 조계사를 찾았지만, 송영길 대표 등이 행사장 안으로 들어간 것과 달리 그는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정 의원은 “지난 몇 달간 저 스스로 많은 성찰과 사색의 시간을 가졌다. 불교계의 고충과 억울한 점도 인식하게 됐다”면서 “더 낮은 자세로 경청하고 국민과 불교계의 상생 발전을 위해 더욱 정진하겠다”고 몸을 낮췄다.

이어 “소중한 문화재를 지켜오신 불교계와 스님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데 미력하게나마 제 역할을 다하겠다”며 “부족한 문화재 보호관리법, 전통사찰 보존관리법 등을 살펴서 불교계가 사랑과 존경을 받고 불교 전통문화를 꽃 피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후문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감에서 해인사 문화재 관람료를 `통행세`로 지칭하고 이를 걷는 사찰을 `봉이 김선달`에 비유해 불교계의 강한 반발을 산 정 의원은 이날 조계사에서 열린 전국승려대회에서 사과 입장을 밝힐 계획이었으나 취재진과 짧은 질의응답만 나눈 뒤 발길을 돌렸다. (사진=연합뉴스)




정 의원이 거듭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던 것은 자신의 `봉이 김선달` 발언이 불교계의 거센 반발을 불러온 탓이다. 정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 해인사 문화재 관람료를 `통행세`로 지칭하며 `봉이 김선달`에 비유했다. 당시 국회 회의록을 보면 정 의원은 문화재 관람료 징수 매표소 위치를 문제 삼으며 김현모 문화재청장에게 “매표소에서 해인사까지 거리가 3.5km이다. 중간에 있는 곳을 보러 가려고 하는데 다 돈 내요, 그 절에 안 들어가더라도 내야 해요. `봉이 김선달`도 아니고 이런 것은 문화재청이 나서서 해결해 주셔야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 의원이 불교계를 비하하는 듯한 표현을 쓴 것 자체는 비판받아야 하는 부분이다. 때를 좀 놓치긴 했지만 정 의원도 인정하고 사과한 바 있다. 다만 국감에서 오래된 민원 대상인 국립공원 내 사찰 문화재 관람표 징수 관행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한 것 자체를 잘못이라 보기는 어렵다.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됐지만, 여전히 20곳 넘는 대형 사찰들은 국립공원 입구에서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해마다 국립공원을 찾는 수많은 국민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등에 불만을 토로할 정도다. 불필요한 충돌이 반복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시급히 풀어야 할 차원의 문제라는 점을 환기시켰을 뿐이다. 말 그대로 `달을 가리켰더니 손가락을 비난한` 격이다.

정 의원의 출당 조치를 요구하며 전국승려대회를 강행한 불교계 보다 더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건 민주당 일부 인사들의 행태다. 정 의원은 지난 18일 밤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재명 대선 후보의 뜻이라며 `불교계가 심상치 않으니 자진 탈당 하는 게 어떠냐`는 권유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대선을 앞두고 불교계 표심을 의식한 `이핵관`(이 후보 쪽 핵심 관계자)이 자진 탈당을 권유했다는 게 정 의원의 주장이다. 존재 자체가 불분명한 `이핵관`으로 몇몇 의원의 이름이 거론됐지만, 정 의원은 누군지 밝히지 않았다. 탈당을 권유한 게 이 후보의 뜻인지 `이핵관` 본인 의사인지도 분명치 않다.

민주당 선대위 공동상황실장인 조응천 의원도 전날 정 의원이 스스로 탈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의원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솔직히 차마 말은 못 하지만 마음 속으로 자진해서 탈당해 줬으면 하는 의원분들이 주위에 많을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지금처럼 `선당후사`가 필요한 때가 언제입니까”라고도 했다.

대선을 앞두고 아무리 표심이 시급하다지만, 탈당을 강권하다시피 하는 것은 폭력적 행태나 다름 없다. 이제 와 부랴부랴 전통문화발전특위를 구성하고 전통사찰지원법 개정안 등 불교계 숙원 관련 입법 조치에 나선 것은 그간 입법부의 책임을 게을리했다는 방증이다. 불교계의 실력 행사 앞에 `탈당` 조치 운운할 게 아니라, 사회적 갈등 조정의 중재 역할을 소홀히 한 직무 태만부터 돌이켜보는 게 순리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