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은비 기자
2021.12.08 05:33:00
디자인 너머
게슈탈텐│344쪽│윌북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독일 아우디와 폭스바겐에서 아우디 TT, 뉴비틀, 골프4를 연이어 성공시키며 디자인 명장의 반열에 오른 피터 슈라이어는 2006년 기아 대표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단 한 차례의 대화에서 새로운 운명을 직감한 그는 기아의 디자인최고경영자 자리를 수락하고 한국으로 넘어왔다. 그는 동서양의 경계를 허무는 디자인을 구상한다. 당시 기아를 빈 스케치북과 같다고 표현한 그는 ‘직선의 단순함’이라는 원칙을 바탕으로 ‘호랑이 코’ 등 고유의 스타일을 도입했다. 이를 바탕으로 기아가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된 K시리즈를 탄생시키며 ‘디자인 경영’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알리기도 했다.
책은 세계적 자동차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의 삶과 디자인 철학을 담았다. 독일의 시골 식당 한 켠에서 그림을 그리던 한 꼬마가 유럽을 넘어 한국, 전 세계로 뻗어나간 디자인 명장이 되기까지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담겼다. 어린 시절의 드로잉부터 K시리즈를 만들어내기까지, 펜 하나로 세상을 바꾼 디자이너로서의 성장 과정이 함축적인 글과 이미지들로 구성돼 있다. 안정보다는 도전을, 낡음보다는 새로움을, 전형성보다는 역동성을 추구해온 피터 슈라이어의 방향성이 책 자체에서도 느껴진다.
피터 슈라이어는 모든 디자인이 그 자체로 독특함과 고유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한다. 특히 그에게 자동차 디자인이란 하나의 작품처럼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다. 주제를 가진 의미 있고 중요한 디자인 결과물이 나오려면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야기가 없는 디자인은 그저 형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디자인을 대하는 진정성 있는 모습에서 예술적 영감은 물론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도 얻을 수 있다.